소명자
글ㅣ정노화 선교사(군포이주와다문화센터)

“저 요즘 너무 기분이 좋아요. 지난번에도 많이 기대했는데 자격이 안 돼서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민호는 요즘 기쁜 마음에 들떠있다.

V국의 미등록외국인 부모를 둔 민호가 드디어 학생 비자(D-4)를 받아 합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민호의 부모는 둘 다 노동자로 입국한 지 20년이 넘어서 이제는 거의 한국인이 다 되었다.

큰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미등록상태로 일하면서 돌보기 어렵겠다고 판단해 V국으로 보냈다. 그 후 지금까지 화상통화로만 보며 지내왔으나 둘째 민호는 직접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민호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제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미등록 부모로 인해 외국인등록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 시절까지의 크고 작은 활동에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다.

현장학습을 떠날 때면 한껏 기대에 부풀었었지만 한 번도 버스에 몸을 싣진 못 했다. 등록번호가 없어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민호는 홀로 남겨져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며 몰래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가슴 아픈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운동을 유난히 좋아해서 친구들과 축구할 때면 ‘너 앞으로 축구선수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나 꿈을 펼칠 길이 없었다.

태권도 도장에도 초등시절 내내 다니며 태권도를 배웠지만 등록번호가 없어 한 번도 승단심사에 임할 수 없었다. 만년 흰 띠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고, 검정 띠를 허리에 맨 친구들과 동생들이 부럽기만 했다.

민호는 5살 무렵부터 센터의 토요학교에 나와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랐다. 한글도 배우고 악기도 연주하고, 국어, 수학 등 학과목도 배워가며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학교에서는 함께 할 수 없었던 현장학습도 센터에서는 토요학교 친구들과 엄마들 다함께 민속촌, 남이섬, 동해, 국립박물관, 경주 탐방까지 다녀왔다. 민호의 엄마 아빠는 베풀기를 좋아해 센터에 올 때 베트남 음식을 가끔 들고 왔는데, 특히 솜씨가 좋은 민호 아빠의 요리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들은 삶에 늘 성실했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센터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민호도 주일이면 빠짐없이 대야미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지난해 미등록 아동, 청소년의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출생 후 15년 이상과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경우에 비자를 만들어 주어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지침이 발표되었는데, 민호는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인지라 해당 사항이 없어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국가인권위원회나 여러 전문가들은 이 지침이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아동 보호 등에 미흡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것이 수용되어 2022년 1월20일 △15년 이상에서 6년 이상으로 확대적용 △초․중・고교에 재학 중 등이면 학업을 위한 체류자격(D-4)을 주고 그 부모에게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체류자격을 주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번 조치로 민호가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정부의 이러한 발표가 있은 후 민호 엄마는 얼마나 기뻤던지 상기된 얼굴로 과일 상자를 들고 센터를 찾아왔고, 우리는 기쁨을 같이 나누었다. 민호 엄마 아빠는 한국에서 만나 결혼을 해서 본국에서는 아직도 부부로 등록하지 못했다.

V국에서는 부부가 직접 정부 기관에 출석하여 부부로 등록을 해야 한다. 이제는 민호 때문에 보호자인 부부가 체류자격을 받게 되면 하루속히 본국에 가서 정식부부로 등록하고, 큰 아들 얼굴도 보고, 네 가족이 합법적인 가족으로 등록하여 정상적인 가정을 만들 기대에 가득 차 있다.

사실 민호는 친구와 태권도 대련 중에 다리를 많이 다쳐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미등록 신분이라 의료보험이 없어서 매달 300만 원 가까이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를 한 기독의사의 도움으로 월 30만 원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이제 이런 걱정도 비자를 받게 되면 의료보험 가입과 혜택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될 일이다. 정말 이것저것 기대가 많다. 이 가족에게 올해 가장 큰 선물이 주어졌다. 
민호가 묻는다. 

“이제 저 베트남 갈 수 있어요?” 

“그럼. 이제는 어디든지 갈 수 있지”

“제주도도 갈 수 있어요?”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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