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대한 실망감의 확산

요즘 SNS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면 우리나라가 금방 망할 것만 같아 마음이 산란해진다. 미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북한을 공격할 것이고, 그렇게 시작된 국지전쟁이 세계전쟁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나라는 장기간 재기불능의 나라가 될 것이 뻔하다. 이 같은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미국과 북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면서 중재의 주도권을 잡고자 애쓰고 있다. 보수 측에서는 미국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문재인 정부가 너무 순진하여 위험천만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진보 측에서는 그 길이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세우는 길이라고 정부를 두둔하고 있다. 북한은 그대로인데 남한에는 이념의 골이 더욱 깊어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애국심이 이전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애국심과 같은 대의가 우선적인 가치에서 이미 밀려났다고 보아야 한다. 새천년에 들면서 젊은이들에게 우리나라에 전쟁이 발발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상당수가 '해외로 도피하겠다'고 답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우리나라가 살기 싫은 나라, 희망이 없는 나라이기에 기회만 생기면 미련 없이 떠날 것이라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나라에 대한 실망감이 젊은이들을 넘어 국민들 전체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한국교회의 자숙과 희망의 노래

이처럼 외교나 안보 면에서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혼율의 증가와 가정의 해체, 청년들의 실업과 비혼 인구의 증가, 더욱 심화되는 세대갈등과 노사갈등과 빈부격차, 사회 각계각층에 만연된 왜곡된 성행위와 성추행과 성폭력,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갑질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상승, 정치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꾀하는 정부 주도의 개헌시도 등, 한국의 사회적 상황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교회적 상황도 희망적이지 않다. 숫자적 질적 침체가 확연하다. 성도와 교회를 향한 사회적 질책이 가혹하다.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를 향한 정부의 압력이 노골화되고 있다. 진보적인 역사학자나 정치가들은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최대 이익집단으로 행사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는 언제나 친미 반공 친정부의 노선을 견지했으므로 교회를 향한 현 정부의 평가가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만일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대의 주류이념들을 평가하고 극복했다면 한국사회를 훨씬 더 잘 선도했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자숙해야 할 때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성도와 교회는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미국 뉴욕에서 리디머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팀 켈러는 그의 책 Making Sense of God, “답이 되는 기독교에서 기독교의 희망은 인격적이며, 구체적이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경이로우며, 확실하다고 변증하였다.

성도와 교회가 복음에 합당하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이 고난주간이며 바로 이어 부활절을 맞는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큼 부조리와 불의로 고난을 당하신 분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최악의 고난과 죽음을 생생하게 겪으신 예수님께서 당당히 부활하셨다. 그로써 자기를 따르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 어떤 것에도 빼앗기지 않는 찬란한 희망을 활짝 열어주셨다.

50년 전에 부흥사 무디는 유언을 남겼다. “어느 날 신문에 D L 무디의 부고가 실리거든 절대로 믿지 말라.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 살아있을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도 독일의 한 감방에서 사형을 기다리며, 죽음을 자유로 가는 길목의 최고의 축제라고 했다. 그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믿음의 선배들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고난과 죽음에 당당히 맞섰다. 도래할 천국의 완성을 사모했다. 그래서 그들은 멋진 선배들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므로 모든 불의가 떠나가고 이 땅에 진정한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질 날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 최후의 심판 때에 찬란한 희망이 실현될 것이므로 지금 정의를 이루기 위해 폭력과 술수를 부리지 않으며, 그냥 포기한 채 불의에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성도와 교회가 복음에 합당하게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으로 살고 거룩하게 살 때 찬란한 희망이 현실이 된다. 예수님처럼 살 때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산다. 오늘이든지 그날에든지. 예수님만이 성도와 교회와 이 세상의 찬란한 희망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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