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수 목사(김천 초곡교회 담임)

▲ 오인수 목사(김천 초곡교회 담임)
▲ 오인수 목사(김천 초곡교회 담임)

진 에드워드 목사는 ‘세 왕 이야기’에서 다윗과 사울, 다윗과 압살롬 간의 왕권 쟁탈을 향한 내면의 갈등을 창던지기로 비유하며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을 깊이 살펴보게 합니다.

사무엘서에는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다윗에게 창을 던지는 대표적인 두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는 다윗의 출중함에 자신의 왕좌가 위태로움을 느낀 나머지 정신이 왔다 갔다 하며 창을 던진 사울이 나옵니다.

또 한 사람은 다윗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다윗 왕을 이을 대권 1순위인 야망의 사람 압살롬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윗의 눈밖에 벗어나자 결국 반역으로 왕위를 찬탈하려고 아버지 다윗의 마음에 창을 던졌습니다(삼하 13~17장). 사울과 압살롬처럼 자신이 살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창을 던지는 투쟁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학생들을 위한 무상급식이란 화두를 놓고 정치인들이 정적을 향하여 열심히 창을 던지는 모습에서 처절하고 냉정한 세상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계뿐이겠습니까?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창을 던지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 기독교 안에도 존경받아야 할 분들이 서로를 향해 창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역시 창을 힘차게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창날을 갈고 있다가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던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할 수 없지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나에게 창을 던지는데 어떻게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습니까? 당연히 정의를 실천해야죠(?)”라며 창을 던집니다.

과연 그것이 최선일까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창던지기 세상에서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서로를 죽이는 창이 난무하는 삶의 현장을 하나님의 축복의 장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창을 다루는 데 명수인 다윗의 영성을 통해 귀한 교훈을 배우기 원합니다.

사울의 창을 피하던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죽인 실력자로 창을 던지면 정확하게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왔음에도 스스로 절제하고 포기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창을 던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손댈 수 없다”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을 위해 남을 죽이는 창을 내려놓을 줄 아는 다윗의 순종을 배웁니다.

다윗의 마음에 창을 던진 압살롬의 반역에 백전노장인 다윗이 풋내기 압살롬쯤 감당하지 못했겠습니까? 단박에 끝낼 수 있음에도 대적하지 않고 스스로 왕궁을 비웠습니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위한 창을 내려놓을 줄 아는 다윗의 겸손을 배웁니다.

다윗은 수많은 창을 피하는 고난을 통해 영성이 훈련된 성숙한 지도자가 되어 주변의 대적에게 하나님의 창을 던져 가장 강력한 통일 왕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수없이 날아오는 창속에서 순종과 겸손의 사람으로 훈련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창을 던져야 합니다(마 10:34, 눅 12:49). 사울 왕처럼 이기심을 채우거나, 압살롬처럼 욕망을 채우기 위한 창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창을 던져야합니다.

저는 선교 영화 ‘창끝’에서 원주민들이 던지는 창끝에 생명을 잃어가는 선교사들의 모습에서 로마 군병의 날카로운 창끝에 의하여 쏟아지던 주님의 보혈을 생각했습니다. 그 보혈로 인류의 죄가 씻겼고 구원이 임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이 던지는 창날에 심장이 찢어질 것을 각오하고 복음의 창을 던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창을 던지는 사람 므두셀라처럼(창 5:21~27)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까지 복음의 창을 던져서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창던지기 명수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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