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청교도 중에는 상당한 숫자가 재 세례파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어. 예를 들면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잉글랜드 국교회 목사였던 존 스미스(J. Smith, 1554~1612)는 국교회로부터 분리했어.


1608년 제임스 1세의 박해를 피해 추종자들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을 갔단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려고 했어. 사도적 초대교회처럼 순수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지. 신앙고백을 못하는 유아의 세례를 거부했단다. 스미스 목사는 자신이 스스로 신앙고백을 하기 전에 어릴 때 유아세례를 받은 것을 평생 후회하며 자신에게 다시 세례를 베풀었어. 교인 36명에게도 다시 세례를 주었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어디서 들어봤지? 그렇지, 종교개혁 시대에 스위스와 독일, 네덜란드에 있었던 재세례파 그룹과 같았단다.


잉글랜드 청교도 가운데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이 무리가 바로 오늘날 ‘침례교회’(the Baptist Church)의 기원이야. 이들은 처음에 세례를 줄 때 물을 뿌렸지만, 1638년 존 스필스버리(J. Spilsbury)가 물속에 푹 잠기는 침례(浸禮)로 바꾸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어. 스미스는 나중에 네덜란드 재세례파인 메노나이트에 합류했지만, 나머지 교인들은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가 런던에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웠단다. 스미스는 당시 네덜란드에 논쟁이 시작된 아르미니우스의 사상을 따랐어. 이렇게 아르미니안적 신학을 가진 침례교회를 ‘일반 침례교’(General Baptists)라고 불러. 이들이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커다란 교회로 성장하게 된단다.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큰 개신교회이지.


하지만, 침례교회 안에는 아르미니안적 신학을 거절하고 칼빈주의적 예정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도 있어. 그들을 ‘특수 침례교도’(Particular Baptists)라고 부른단다. 19세기 유명한 영국의 설교자인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이 이 부류에 속해. 지금도 침례교회에는 이 두 가지 흐름이 있어.


한편 1608년 잉글랜드의 존 로빈슨(J. Robinson, 1575~1623)이 고국을 떠나 회중들과 함께 네덜란드 레이던에 도착해 교회를 세웠단다. 이 교회가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의 기원이야. 이 교회는 스미스의 침례교회와 달리 칼빈주의 예정론을 지지하였고 아르미니우스의 신학을 거절했어. 교리적으로 장로교와 개혁교회와 일치했지.


회중교회는 1658년 런던에 있는 사보이 궁전에서 26일 동안 모여 ‘사보이 선언문’(Declaration of Savoy)을 만들었어. 교회 정치에서 노회와 총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지역 개교회가 완전한 최종적 교회라고 보았단다. 교회의 직분자는 교인의 대표일 뿐이며 교회의 최종 권위는 교인, 곧 공동의회에 있어. 장로교회나 개혁교회가 교회의 당회에 권위를 두는 것과 다르지.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로버트 브라운(R. Browne, 1550~1633), 헨리 바로(H. Barrow, 1550~1593), 존 그린우드(J. Greenwood, ?~1593), 토마스 졸리(T. Jollie, 1629~1703) 등이 있단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 때문에 회중교회의 이론을 따르는 자들을 ‘Johnsonism’, ‘Robinsonism’ 혹은 ‘Brownism’이라고 불리기도 해.


당시 네덜란드 개혁교회 안에는 인본주의 신앙이 되살아나면서 예정교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 아르미니우스가 레이던 대학의 교수였으니, 그 도시는 아르미니우스의 본거지였던 셈이야. 로빈슨과 교인들은 철저한 칼빈주의자들인데, 그곳에 정착해 살기 쉽지 않았단다. 경제적으로 가난했지만 신앙적 평안과 부요함을 원했지. 그들에게 네덜란드의 레이던의 상황은 신앙적으로 위험해 보였어.


로빈슨 목사는 새로운 망명지로 아메리카 신대륙에 관심을 가졌단다. 목사 로빈슨은 교인들의 이주 준비를 시키고 정작 자신은 동행하지 못해. 잉글랜드로 돌아온 교인들은 윌리엄 브래드퍼드(William Bradford, 1590~1657)와 윌리엄 브루스터(W. Brewster, 1566~1644)를 지도자로 세웠어. 총 102명이 ‘메이플라워호’(Mayflower)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1620년 12월 21일 뉴잉글랜드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해 식민지 개척을 시작하면서 오늘의 미국이 시작된단다. 브래드포드는 제임스 1세가 청교도를 핍박하고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교회 건물에서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 때문에 잉글랜드를 떠나 나그네와 순례자로 살았어. 이들은 가장 먼저 교회를 세우고 그 주변으로 자신들의 집을 지었지. 브래드포드는 첫 지사가 되고 1630년 즈음 히브리서 11장 13절의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는 말을 인용한 것에서 이후 ‘필그림’(Pilgrims)이라 불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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