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길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한다(행 2:42). 여기서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는 하나의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들 사이의 ‘교제’(코이노니아)를 힘썼는데, 곧 떡을 떼는 것(식사)을 통해 교제하였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식사’는 단지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간의 인격적 교제를 의미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것을 통해 성도들 사이의 ‘교제’도 힘을 썼다. 

 

예배 후의 식사 교제


이처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 상호 간의 교제도 중요하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뿐만 아니라 성도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도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특히 개신교는 예배 중심과 설교 중심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교회는 설교가 너무 많다. 목사 혼자서 일방적으로 말하고 교인들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한다. ‘아멘’ 몇 마디 하는 게 전부 다다.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은 집에 가기 바쁘다. 대형 교회에서는 예배가 끝나면 빨리 집에 가라고 재촉한다. 다음 손님 받아야 하니 자리를 비워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서 성도들 사이에 교제가 있어야 만족을 얻고 기쁨을 누리게 된다(요일 1:3-4; 요이 12절).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는 이스라엘 장로 70명과 함께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뵙고 난 후에 먹고 마셨다(출 24:9-11).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의 전도를 받고 나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후에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다(출 18:12). 이것은 이드로가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표이다. 따라서 예배 후에 나누는 식사는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같은 한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자매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런 식사 교제를 무시하고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식사하더라도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화도 없이 후다닥 먹고 치운다. 또 식사 후에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쓸데없는 잡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잡담을 그치고 빨리 모임에 참석하라고 재촉한다. 

 

참된 영성의 회복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물질화되고 개인주의화되어서 인격적 교제를 상실하고 있다. 상호 간에 인격적 대화와 영적 교제를 나눌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대인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고독하게 지내며 방황하다가 이단이나 거짓 영성에 빠지기도 한다. 교회가 이런 현대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하는데, 교회도 상업화되고 제도화되어서 제 기능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서양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경건한 생활을 위해서는 ‘영적 소그룹’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이 가정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기도하는 ‘기도회’ 모임 같은 것이다. 한국 교회에도 물론 가정예배와 구역 모임과 셀 모임 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도 대개 일방적인 예배와 설교로 진행된다. 주고받는 대화가 없다. 또는 교회 성장의 한 방편으로 운영되다 보니 참된 교제가 없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지금 이 시대의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하고 있다. 전에는 한국 교회가 그런대로 한국 사회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선교 초기에는 의료 활동과 교육 사업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는 내세에 대한 소망과 절제 운동을 통해, 해방 후에는 빈곤 탈피와 잘살아 보자는 희망을 통해 한국 사회의 필요에 부응해 왔다.

물론 영혼 구원과 전도라는 기본적 사명은 늘 우선적으로 유지됐지만, 시대마다 필요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때 효과적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 한국 교회는 방향을 잃고 한국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이단들이 이 시대의 필요에 잘 부응하면서 세력을 넓혀 가는 중이다.

현대인은 참된 영성을 갈구하고 있다. 그 답은 침묵이나 금욕이나 신비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토대를 둔 영적 교제에 있다. 물질화되고 기계화되고 비인간화된 이 시대에 성도간의 교제는 매우 중요하다.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인격적 대화를 통해 참된 교제를 회복하는 것은 이 시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교회의 사회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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