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 면목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이 세상은 타락 이후로는 항상 복잡한 것이다. 때때로는 목가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 진면목으로부터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타락 이후의 이 세상은 여러 면에서 복잡하고 그 자체로는 이 세상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실타래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복잡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 현실의 진면목을 우리로 짐작하게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현실은 더 복잡하다. 그렇게 복잡한 현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자만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그 복잡한 현실을 바르게 파악해야만 하고, 성령님께 의존해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면 바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 말 속에 들어 있지만,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님께 의존해서 현실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로 보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눈을 돌리든지, 세상 문제의 일부만 파악하든지, 그저 이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그 안에 가진 그 정체성에 충실하게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약동으로 현실을 가장 바르게 보아야 한다. 여기 우리 사명의 일부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상한 세계로 도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이 지속되면 그 사람들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이 아니든지, 아니면 매우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서 영적 성장을 해야 할 사람들이다), 또 이 세상의 일부만을 보고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반응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1)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해서, 또한 (2) 성령님께 의존해서 이 세상을 정확히 직시할 책임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보다 이 세상의 문제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특히 그에 대한 바른 판단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 세상은 그 어떤 방도로도 그 스스로는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히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이 일반 은총 아래서 움직여 나갈 수도 있으므로 그러러면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런 방향성에 대한 판단은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고, 타락 한 이후 본래 이 세상은 그 스스로는 궁극적 해결을 할 수 없기에, 일반은총 가운데서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 악한 것들 가운데서는 최선이라는 생각 정도를 가지는 것이다.


둘째로, 이렇게 정확히 판단한 자료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은 처한 상황 가운데서 매우 구체적인 기도를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물론 기도는 그 전부터 해 왔으니, 우리가 처한 이 복잡한 상황에 대해서 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이제 주께서 주시는 지혜 가운데서 우리가 처한 복잡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 가운데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의 교훈적인 뜻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서 이루어지도록 바르게 기도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기도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각 교회 공동체 마다 이렇게 파악된 하나님의 교훈적인 뜻의 실현을 위해 기도하는 그 힘을 참으로 믿어야 한다.


셋째로, 이렇게 바르게 판단된 주님의 뜻에 근거한 실천에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결국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이고, 또한 자신과 상대의 변화를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해서 가지는 실천이 된다. 모든 불이익을 다 감수하는 실천이고 모든 정황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실천이다. 그런 기독교적 실천가들을 찾아보기 드물기에 우리들은 이런 실천을 불가능하다고 버려 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능하게 하신다. 우리들이 진정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이 복잡한 현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다운 생각과 기도와 실천을 하여 갈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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