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보로 덮고, 흰 장갑을 끼는 게 이상합니다

성찬식이 있을 때 그 상 전체를 흰 보로 덮어둡니다. 그리고 성찬을 수종드는 장로님들은 흰 장갑을 낍니다. 흰 장갑을 끼면 손의 감각이 무디어져서 분병과 분잔하는 것을 돕기는커녕 실수하기도 쉬운데요. 저는 이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장례식을 연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 성찬식은 장례식이구나하는 생각이 번 듯 듭니다. 성찬식을 정갈하게 진행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흰 보를 덮고, 흰 장갑을 끼는지 모르겠는데, 그 상은 식탁이라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제단이 아니라 식탁 말입니다.


성찬상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랫 강대상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성찬상인데, 평상시에는 보통 사회상으로 씁니다. 저는 강대상만이 아니라 성찬상을 강단 위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다가 세례대가 있다면 금상첨화이지요. 설교단, 성찬상, 세례대가 같이 있다면 은혜의 방편 전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배당 성구(거룩한 가구)에서부터 우리는 은혜의 방편을 보이고 시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배당의 구조에서 이 세가지 성구를 긴밀한 방식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찬식이 있는 경우에는 성찬상위에 흰 보를 덮고 그 위에 떡과 잔을 배치합니다. 그리고는 그 떡반과 성작(聖爵)을 다시금 흰 포로 덮습니다. 그 흰 보에 빨간 글씨로 나를 기념하라는 글귀를 새기기도 합니다. 사실, 로마교회에서는 성작의 뚜껑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폭이 넓지 않은 흰 보로 덮어 놓습니다. 이것은 그 잔이 주님의 거룩한 피로 바뀌기 때문에 그 성작에 다른 이물질이나 날파리들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작의 뚜껑이 있기도 하고요.


떡반과 성작이며 성찬상 전체를 흰 보로 덮어 버리는 것은 지적하셨듯이 시신이 놓이는 관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성찬을 수종드는 장로들께서 흰 장갑을 끼는 것도 그렇고요. 흰 장갑을 끼면 아무래도 손의 감각이 무디어져서 떡반과 잔을 나르면서 떨어뜨리거나 실수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예식을 거룩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흰 장갑을 끼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냥 맨손으로 떡반과 잔을 회중들에게 돌려도 됩니다.


로마교회에서는 건물부터 시작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시각에 호소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개신교회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이 유일하다고 하겠습니다. 성찬상 자체는 흰 포로 덮더라도 떡반과 성작은 예배 시작시부터 온 회중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떡과 잔을 처음부터 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밀스럽게 덮어 두었다가 선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감취었던 비밀이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으니 처음부터 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이제 눈으로 보기도 합니다.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만지고 우리의 혀로 맛보기도 합니다. 로마교회처럼 우리는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먹고 마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먹히러 오신 분입니다. 신자는 성찬식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온 회중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신자 개개인은 그 몸의 지체가 됩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머리와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합체하는 시간이 성찬식입니다. 이게 바로 보이는 신비입니다.


성찬상은 제물을 올려놓는 제단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식탁입니다. 우리는 차려진 음식을 볼 뿐만 맛을 봅니다. 성찬상은 비밀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그리스도를 숨겨두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밝히 나타나셨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 세상 모든 화려함보다 더 고상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 찢어주시고 흘려주셨습니다. 신자는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보기도 합니다. 장님이 눈을 떠서 감격적으로 제가 이제는 봅니다라고 말하듯이 우리는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생생하게 누립니다. 성찬식에는 근심은 조금, 기쁨은 많이 있어야 합니다. 성찬상을 조금 더 일상 쪽으로 당겨 와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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