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하 원장(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치리회 내의 협력과 갈등 


가끔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의 소식을 듣곤 한다.  교회 안에서 이들의 갈등이 지속되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회원들 관계가 좋았던 교회라고 하더라도 어떤 사건으로 목사와 장로님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그 일이 지속되면 교회는 이내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교회를 개척하여 강력한 리더십으로 교회를 성장시켰던 전임 목사가 은퇴하고 난 뒤, 비교적 젊은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하여 사역을 시작할 때 때때로 갈등이 발생하곤 한다. 비교적 젊은 후임 목사가 리더십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신한 목회 계획을 교회에 제시하고 이를 관철하려고 하는 경우, 그에 동의하지 않는 연륜이 오랜 장로님들이 목사에 협력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회(會)에 의한 치리: 장로교 정치의 본질


장로교회의 교회 정치에서 ‘협력’은 목사와 장로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교회정치 제41조에 목사의 직무를 크게 9가지로 명시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그런데 헌법 안에 있는 교회정치편에는 이 협력이라는 직무를 장로의 직무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교회정치 66조는 장로의 첫 직무를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로 명시한다. 장로교회에 속한 목사와 장로라고 하면 자신들의 직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요구된다. 장로교회 정치는 장로들 즉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가 치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장로들의) 회에 의한 치리’는 장로교 정치의 본질이다. 개체교회는 당회, 지역교회는 노회, 전국교회는 총회에 의해서 치리가 시행된다. 사실 용어 자체가 정확한 개념을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데, 당회는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개체교회의 치리회를 의미한다. 노회나 총회 역시 지역의 범위를 제외하면 모임의 본질은 치리회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회에 의한 치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나 성공회 교회의 감독 정치를 거부한다. 만약 어떤 목사가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운영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장로교 정치를 따르는 목사라고 할 수 없다.

장로교회의 모든 목사는 임직할 때에 ‘회에 의한 치리’가 성경에 가장 부합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따르겠다고 서약한 자들이다. 이것은 장로들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장로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회에 의한 치리’라는 것이 단지 교회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규정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목사와 장로들이 치리를 행하는 데 있어서 올바로 협력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와 장로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회에 의한 치리’가 이루어지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협력적 자질을 지닌 목사와 장로의 선임
    

비록 회에 의한 치리가 성경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시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계명이지만 그것을 성도가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회에 의한 치리가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교회는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늘 숙고해야 한다.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원리와 실천 지침이 없다면 회에 의한 치리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교회 헌법은 원리만 제시할 뿐, 어떤 세세한 시행 세칙이나 지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고신총회의 헌법에 수록되어 있는 ‘교회정치’는 목사의 직무는 장로와 협력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것으로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목사가 어떻게 협력해서 치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교회 정치가 그것을 특정화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각 개체교회마다 개체교회에 따라 적합하게 시행해야 할 문제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체교회에서 목사와 장로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당회와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와 장로를 제대로 선출하는 것이다. 교회가 목사를 청빙할 때, 특히 당회원인 장로들은 목사가 장로들과 잘 협력할 수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청빙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 점을 깊이 검토하는 작업은 종종 경시되곤 한다. 
그것보다는 목사 청빙에 있어서 훨씬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목사가 교회를 얼마나 부흥시킬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하지만 고신총회 헌법의 교회정치는 교회부흥을 목사의 본질적 직무에 속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교회부흥이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부흥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협력보다는 독재가 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소위 급성장한 적잖은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일반적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 중 더러는 장로와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비전과 경륜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장로를 교회 발전을 가로막는 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장로를 잘 세우려고 하지 않는 목사도 있다. 이런 목회자의 목회는 처음과는 달리 결말이 안 좋게 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장로의 최우선적 직무: 목사와의 협력


장로들의 목사와의 협력 사역은 목사가 장로와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보다 더 비중 있고 중요한 직무이다. 고신총회 헌법의 교회정치 41조는 목사의 직무 중의 8번째 직무로 장로와의 협력을 명시해 두고 있지만 66조에서 장로의 직무와 관련해서는 목사와의 협력사역이 장로의 8가지 직무 중에서 첫째 직무로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장로에게 있어서는 목사와의 협력 사역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장로교회에서 목사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장로가 잘 협력하지 않으면 교회를 목회하기가 쉽지 않은 정치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로들은 기본적으로 양무리를 잘 감독하고 돌보기 위해 세워진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으로 성도들을 먹이고 돌보는 목사와 함께 교회를 치리해 가야 하고 그 일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목사와 협력해야 한다.

이처럼 장로가 해야 할 직무 중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목사와의 협력이다. 따라서 장로를 선출할 때는 그 사람이 정말 목사와 잘 협력할 수 있는 신앙 인격과 덕목을 지니고 있는지를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로교회에서는 장로들도 교인들의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는데 교인들이 장로를 세울 때 그 사람이 지닌 협력의 자질을 얼마나 중요하게 고려할까? 아마 대부분이 그 사람의 성품이 좋다든지,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봉사해 왔다든지, 헌금을 힘껏 하는 이들을 선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덕목은 목사와 협력할 수 있는 자질과 신앙인격이다.

교회 직분론의 핵심은 직무론이다. 교회를 돌보고 감독하는 장로의 직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장로를 세우는 것이 건강한 장로교회를 세우는 관건이고 근본적인 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에게 목사와 장로가 해야 할 직무가 무엇인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하여 성도들이 그런 인물을 교회의 직분자로 선발해야 하겠다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갖게 해야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성경적 예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직분자 선출 사례다.

당시 열두 제자와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흥왕하며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들이 맡아지자 사도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집사들을 뽑아 그 일을 맡아 하도록 결정했다. 그런데 그 집사들을 선출하는 일을 열두 제자들이 직접 하지 않았다. ‘형제들’이 선출하는 일을 하도록 즉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직접 선출하도록 열두 제자들은 명령했다(행6:3).

그러므로 성도의 중요한 일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말씀 사역자들과 함께 성도들과 교회의 여러 일들과 업무를 잘 돌보는 협력 사역자들을 선출하는 일이다. 오늘 고신교회는 장로교회로서 이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며 교인들이 즉 성도들이 목사와 장로들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치리의 본질: 천국의 열쇠


목사와 장로가 협력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치리이다. 협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치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교인들이 치리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다 보니 치리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현재의 교회들은 치리를 강조하지 않으니, 교인들이 치리에 대해서 아예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장로교회에서 치리란 천국의 열쇠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따라서 천국의 열쇠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천국의 열쇠’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열쇠는 집과 문을 여는 도구이다. 천국의 열쇠는 천국 문을 열게 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지닌 존재는 엄청나면서도 중요한 권세를 소유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권세가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교회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교회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각기 다른 답을 제시했다. 성경에는 이 열쇠는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베드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로마 가톨릭 교회(천주교)에 따르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 열쇠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으며 자신이 교회의 첫 교황으로 사역했고, 그리고 이후 자신의 후계자인 교황에게 이 열쇠를 전달했다.

그런데 그리스정교회나 성공회는 이 내용을 다르게 이해한다. ‘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 of the heaven)는 헬라어로 ‘열쇠들’(keys)이라는 복수형으로 쓰였다는 표현에 주목하여 해석한다. 그래서 수제자 베드로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와 사도들도 천국의 열쇠를 나누어 가졌다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개신교회들은 이 구절을 다르게 해석한다.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 모두에게 준 것으로 해석하고 이해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이 천국의 열쇠를 나누어 주었다고 이해하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이에 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0장 2항에서는 천국의 열쇠는 교회의 사역자/직원들(officiers)에게 주어졌다고 가르친다. 교회의 사역자/직원(officiers)은 넓게 보면 성도들이지만 좁게는 바로 교회의 사역자 즉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officiers)인 목사와 장로들이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들이 천국의 열쇠를 소유하여 지상의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교회의 직분자라는 인식은 장로교 교회정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천국의 열쇠에 대한 가르침을 이와 같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교인들은 장로는 천국의 열쇠를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교회를 관리하는 관리직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회원권의 중요성


그런데 천국의 열쇠가 가리키는 본질은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인 교회의 열쇠이고 그 교회의 회원권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교회 치리회는 이 열쇠를 통해 신자를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교회 밖으로 쫓아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인 가시적 교회의 회원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세례이다. 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교회의 회원이 될 세례받을 자의 신앙고백이 진실되다는 것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그것은 천국의 열쇠를 지닌 치리회 즉 장로로 구성된 당회이다.

세례를 시행하는 것은 목사가 해야 할 직무이지만 세례받을 자의 믿음을 판단하여 교회의 명부에 올릴 것인지의 여부는 당회가 수행해야 할 직무이다. 이 일에 있어서 목사와 장로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교회에서 세례 교육은 목사가 주로 하지만 세례 전에 당회가 모여 즉 장로님들과 목사가 다 함께 동재하여 세례받을 자들에게 문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의 회원권을 가볍게 여기면 세례도 가볍게 여길 것이고, 세례 교육도 대충하게 될 것이고, 세례 문답도 형식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회원 수는 쉽게 늘어나겠지만 목사의 장로의 협력은 퍼석해지고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적잖은 교회들에서 세례와 관련한 사역은 목사가 다 알아서 하고 장로는 그냥 들러리로 참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큰 교회의 경우에는 교역자들이 장로가 해야 하는 직무를 대신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장로의 주요한 직무인 천국의 열쇠를 서랍 안에 묵혀두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장로들이 이 일을 목사와 함께 감당해 가도록 해야만 한다.

유아 세례 및 입교도 교회의 회원권과 관련이 있다. 유아세례는 부모의 신앙을 확인하는 것이고, 학습은 유아세례를 받은 청소년들의 신앙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일도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목사와 장로가 함께 협력하여 수행해야 한다. 장로들은 유아세례 및 입교의 일을 종종 목사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로들은 이 일도 천국의 열쇠 즉 회원권에 관련된 것이기에 자신의 직무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수행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교인들을 제대로 치리하기 위해서 치리회는 교인들을 직접 살펴야 하고 그 일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성도들을 만나거나 접촉해야 한다. 교회가 클수록 이 직무는 목사 혼자서 할 수가 없다. 목사와 장로는 함께 필요할 때마다 동사하면서 교인들을 돌보고 심방해야 한다. 장로님들도 전화면담, 병원방문, 개인식사와 같은 심방의 결과를 당회에서 보고하고 그에 기초해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권면하고 경책해야 한다. 
        

가장 통상적인 협력사역: 성찬의 시행 
    

앞에서 말했듯이 장로와 목사의 협력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협력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목사와 장로로 세우는 것이다. 이 일에 실패하면 어떤 방법도 협력에 큰 효과가 나지 않는다. 목사와 장로가 잘 협력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가장 쉽게 잘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다.

예배 가운데서 목사와 장로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성찬이다. 성찬 속에서 목사는 말씀으로 영적인 음식과 음료를 준비하고, 장로들은 그것들을 성도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 협력 사역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목사와 장로는 신앙고백서와 대교리문답을 통하여 이 의미를 잘 배우고 인식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협력이 보다 잘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길은 성찬을 지금보다 조금 더 자주 시행하는 것이다. 성찬을 통하여 목사와 장로들은 예배 속에서 협력하는 자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또 증명하게 된다.  


나가면서 


목사와 장로가 협력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잘 세워가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세움 받은 자들인 목사와 장로는 이 일을 위해 더욱 서로 협력하면서 즐겁게 신실하게 직무를 감당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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