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예수는 없다. 예수는 증발되고 사람들의 이야기만 무성하다. 그래서 한국교회 미래는 없다이 내용은 한국교회를 리서치 한 외국 신학자의 말이다.

필자는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으로 한국교회 미래는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성하다는 진단에는 유구무언일 뿐이다. 즉 한국교회 설교는 모범적 설교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모델링해서 미화 시키고 그 인물을 본 받도록 적용하는 윤리적 설교가 한국교회 강단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모범적 설교는 인간들의 이야기, 인간 중심의 설교, 윤리 도덕적인 설교이다.

성경을 인물 중심으로 조명할 때 범하기 쉬운 취약점들이 있다. 우선 부분적 역사상황을 오늘의 시간과 장소로 차용하여 적용 시키는 데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역사속의 본문이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단회적 사건일 수도 있는 것을 등식논리로 적용할 경우 설득력이 약하고,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일 수가 없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실제적용이 불가능하다. ‘모든 재산을 사도들의 발아래 두고 유무상통 할 수 있는가, 자신의 전 재산을 연보한 그 과부처럼 오늘 우리도 그렇게 헌금생활을 할수 있는가, 사도바울과 같이 눈이 멀었던 체험을 통해서만 중생할 수 있는가, 다소 억지스러운 물음이기도하지만 모델설교가 지니고 있는 함정이기도 하다.

모범적 인간만을 찾는다면 코란경에도 얼마든지 있고, 타종교의 경전에도 무진장하다. 또한 역사 교과서 중에는 피부에 와 닿는 인물들이 생생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야기는 설교가 아니고, 위인들의 교훈강좌에 불과하며,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구속사적 설교는 인간중심의 설교를 하나님 중심 곧 그리스도 중심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주제가 되는 설교, 구속사의 전 과정을 통해서 일하시는 영원하신 로고스가 중심이 되는 성경해석. 그 설교를 구속사적 설교, 복음적 설교, 인간의 영육을 살리고 치유하는 생명의 설교로 분류할 수 있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앎이 없이는 성경은 우리에게 죽은 문자다라고 고백했다. 필자는 신학자도 교수도 아니지만 양 떼들을 먹이고 치는 고신 목회자로 지난 30여 년간 한결같이 구속사적 설교를 강단에서 선포했다. 성경의 선한 주인공은 오직 한분 하나님뿐이시다. 오직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사를 섭리하신다. 인간은 하나님 은혜로 인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그러므로 율법과 인간의 행위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성경을 토막 내서 한 인물을 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인간들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게 됨으로 구속사적, 통전적 맥락을 놓칠 수가 있다. 그것은 구속사에서 인간을 소도구로만 쓰시는 역사의 주인공은 못보고 어떤 장면의 엑스트라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는 격이다. 이럴 경우 결과는 성경을 해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본 받을만하지만 그 이야기가 그리스도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으면 왜곡된 성경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크로스웨이 성경연구의 저자 해리웬트 박사는 이렇게 제안했다.

첫째, 우리는 성경의 줄거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내러티브 분석)

둘째, 우리는 그 줄거리를 하나로 엮는 주제를 알아야 한다.(내러티브 신학)

셋째, 우리는 그러한 성경의 줄거리와 그 주제들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예수님 가르침의 체계화)

여기에서 예수생명, 예수치료, 예수회복, 예수축복이 나온다.

여기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구속사적 설교는 생명을 살리고, 치료하고, 회복시키고, 영육을 번성케 한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설교를 하는 목회자는 영적 닥터요, 영적 선장이요, 영적지주이다. 이것이 구속사적 설교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거룩한 사명 때문에 우리는 목자장 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부름 받은 목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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