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국(고신대학교 교목실장)

2016년이라는 단위의 시간이 닫히고 2017년이라는 새로운 단위의 시간이 열린다. 닫히는 올해 마지막 몇 날이 한 해의 종말이라면, 열리는 2017년은 미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종말이란 개인과 세계에 더 이상 시간과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파국으로 받아들여지고, 미래란 열려질 시간과 기회를 예상하기 때문에 희망으로 받아들여진다.

성격이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종말과 미래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리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영상으로 보는 송년과 새해는, 먼저 전날 저녁 어두움이 짙게 깔리고 다음 날 여명이 되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세상이 밝아지지만, 우리 사회의 심리적 기상도에서 새해는 희망으로 밝아지기는커녕 종말의 경우처럼 지속적으로 어두워지고 있다. 미래가 희망의 의미를 갖기보다 종말의 의미로 수렴되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인지 새 세대를 생산하는 생물학적 과정인 결혼과 출산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미래라는 시간을 별로 기대하지 않거나, 미래를 위한 자신감을 잃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인본주의 사회의 시간과 세계 이해에서 미래를 희망대신 종말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의외의 결과이다. 근대이후 사회의 가장 주요한 관심은 개인의 주권과 경제적 소유에 두어져 왔다. 세계와 국가의 주권자로 간주된 인간, 존재와 인생의 주권자로 간주된 개인이, 당당하고 자신 있게, 과학과 기술을 도구로, 극도의 효율과 소통의 방법으로 이룩해 온 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는 역사발전에서 큰 진보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상당히 안전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불안감을,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큰 결핍감을, 많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큰 피로감을 느끼면서 미래를 어두운 종말처럼 여긴다.

그 외적인 원인은 노동과 경제 조건에 기인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인간 개별 주체의 근원적인 본성적 불안에 기인하고 있다. 개별 주체, 곧 지성보다 더 깊은 차원의 마음은 절대적 주권과 통제력의 확신이 없는 한, 상대적인 수준 혹은 잠정적인 수준에서 안전감과 만족감을 누리지 못한다. 인간은 비교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존재여서 더 안전한, 더 풍요한 경우가 존재한다면 항상 불안과 결핍을 느낀다. 그래서 경쟁적 주체로서 스스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무리하면서까지 더 나은 안전과 만족을 추구한다.

세계와 사회에 대한 많은 지식과 정보의 소통이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근대이후 지식과 정보란 세계와 사회 내 다양한 요인들과 그 상호관계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며, 그 정보들을 기반으로 거시적인 미래예측을 시도한다. 오늘날 인구학적 추이와 거시경제의 추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수집되는 수많은 정보가 미시적 자료들을 채워 미래를 거의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특히 그 정보를 배포하는 미디어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더욱 불안을 증폭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경제의 불안정과 조건변화가 종말과 미래 수렴현상의 출발점이기는 하나, 본성의 불안과 세계 내 정보들과 미디어가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미래를 결정적으로 어둡게 예상하게 하고, 무력감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젊은 세대에서 더욱, 상황의 해석과 미래의 비전에서 우리사회의 세속적 세계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불행감과 무력감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우리는 종말과 미래의 기독교적 의미와 이에 연동된 정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종말이라는 말은 파국 혹은 파멸만을 뜻하지 않는다. 원래 종말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시대를 뜻한다. 종말이 파멸을 의미하는 것은 심판받게 될 반역적 세상에 대한 것인 반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과 회복을 뜻한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벌써 시작되었고, 미래에 재림으로 새 시대가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라면 미래의 기상도는 밝다.

그리스도인은 시간과 세계, 특히 미래에 있어, 세속적 시대정신에서 배제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섭리를 믿는 사람이다. 주권자 하나님이 통치하시므로 세계와 미래는 인간 주권과 세계 내 정보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불안과 결핍과 피로감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지만, 하나님의 구원과 통치를 믿으며 안전감을,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실현의 미래 확신에서 소망을 노래하며 산다. 어두운 미래를 예상하면서도 이렇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 행위가 실재하고, 말씀과 성령이 우리 마음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이다. 거시지표에서 2017년은 별로 밝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있어 우리에게 미래는 희망이 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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