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이름을 더럽힌 공범들

신대원 졸업식이 있었다. 총회장 목사님은 졸업생들에게 좋은 목회자가 되라고 설교하셨다. 사활적인 충고요 권면이요 도전이다. 과연 이 내용이 졸업자들의 마음에 잘 새겨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좋은 목회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환경이 더 좋아지는 쪽에 관심이 많지나 않은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해 있지 않는지 염려된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고 믿음과 의심이 싸우는 것이 요즘의 신대원 졸업식이다.

무엇보다 졸업생들은 그리스도인의 기본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졸업생들은 큰 그릇이 되기 전에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거룩한 말씀을 전할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것은 자기모순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거룩한 길을 가야 한다. 거룩한 삶 위에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는 사명이 불타올라야 한다.

미투(me too) 운동이 우리 사회에 날마다 충격을 주고 있다. 존경 받던 이름 뒤에 감추어진 추한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고 절망한다.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는 우리도 현실 앞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폭로된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없다는 보장도 없다. 멈춤 없이 질주하는 성적 타락은 동성결혼합법화뿐만 아니라 수간의 합법화까지 치달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정치, 문화, 예술, 스포츠, 종교 등 모든 영역이 오염되어 있다. 이 땅이 그 타락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 공범들이다.

교회 부흥의 시대는 끝났다?

수년전 기독교가 가장 교인수가 많은 종교라는 통계가 나왔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그 통계를 믿지 못했다. 아마 이단 숫자나 명목상의 교인들 숫자가 더해진 결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교회 부흥의 소식은 거의 듣지 못한다. 해마다 3백 개의 교회가 문을 닫는다. 상가 건물에 먼지 뒤집어쓴 교회 간판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띈다. 이단에 교회당을 팔아버린 교회도 있다. 교회 숫자는 늘었지만 교인 숫자는 늘지 않았다. 교인의 고령화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교인의 절반이 주일 교회 예배보다 학원을 택한다고 한다. 그런 현상은 장립집사나 권사 혹은 장로 등의 중직자에게 더 심하게 나타난다. 생활수준이 윤택한 교인은 3분의 2가 학원을 택한다고 한다. 주일학교 없는 교회가 절반을 넘어 섰다. 교회나 주일학교의 부흥을 가로막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다. ‘교회 부흥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설득력을 지닌다. 다음 세대에 대해서 희망적인 말을 하기 어렵다. 졸업생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다들 옛날 부흥의 때를 추억한다. 그때는 교회만 지으면 사람들이 몰려왔다. 자기는 안 다녀도 자녀들은 교회 보낸다는 부모도 많았다.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까지 어린이 예배가 있었다. 교회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장이요 놀이터였다. 그 아이들 가운데 수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되었다. 신나는 부흥의 때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라고 해서 모든 것이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 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제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성도들도 많았다. 군대에서는 교회 다닌다고 얻어맞기도 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조롱과 핍박과 고난을 각오해야 했다. 지금은 그런 극단적인 공격은 많지 않다. 여러 부분에서 예수 믿기가 이전보다 편해졌다.

희망 고신, 희망 다음 세대는 거룩

하지만 우리는 어려움을 열거하는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이젠 불신앙의 말을 그쳐야 한다. 지금이 가장 어려운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인 믿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아닌가. 성령이 역사하신다면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교회가 쪼그라드는 것은 비정상 아닌가.

문제는 우리의 거룩이다. 우리가 거룩한 그릇이 되면 거룩한 영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난다. 성령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시다. 사도행전에 나타났던 부흥, 웨일즈나 인도나 평양에서 일어났던 대부흥이 지금 이 시대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의 종들이 깨끗해야 한다. 힘 다하여 기도하고 전심으로 헌신해야 한다. 그럴 때 부흥의 문은 열린다. 졸업생들이 그런 믿음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기 바란다. 그런 부흥의 시대를 열어주기 바란다. 그래야 희망 있는 고신, 희망 있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다. 그래야 희망 있는 교회, 희망 있는 우리나라가 될 수 있다. 거룩한 삶에 희망이 있다. 거룩은 선택이 아니다.

저작권자 © 고신뉴스 KN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