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목회환경은 급격한 변화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시대와 환경은 크게 변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목회방법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마치 스마트폰 시대에 마차를 타고 사역하는 것과 같다. 미국 어느 신학교의 교정에 걸려있던 문구를 잊을 수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말씀을!(The everlasting Word for the ever-changing world).” 변화하는 세상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기업, 아니 세상의 변화를 앞서 주도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시대에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위대한 기업이 된다. 목회자들이 앞장서서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려는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급속한 반기독교화 사회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면서부터 기독교는 줄곧 한국 사회의 발전과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고, 일제와의 투쟁과 대한민국의 건국,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하면서, 교회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전도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정체기를 거치면서 점차 대형교회의 문제점과 지도자들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사회는 세속화를 넘어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로 변했다.


최근엔 동성애 이슈와 함께 성 자유화, 다양한 거짓 인권들로 반기독교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다원주의와 세속화가 사회 곳곳에서 온갖 종류의 인권과 평등과 자유의 이름으로 진행되어 결국 ‘차별금지법’을 향해 가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과 분열은 더 심화되고 있다. 교회 밖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회중들의 가치관과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주일학교 교육이 이런 세상 속에서 자라고 있는 다음 세대를 과연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킬 용사들로 세워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교회의 교육도 설교도 목회도 이젠 반기독교적 반성경적 세상과의 치열한 영적 전투이다.


인구 절벽과 고령화


정부의 노력에도 한국의 출산율과 인구증가율은 여전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중고등학교가 늘어가고 있고, 몇 년 후엔 대학이 그렇게 될 것이다. 다음 세대는 사라져 가는데 노령인구는 수명 연장과 의학의 발달로 계속 늘어간다. 교회에도 그대로 청소년부와 주일학교의 감소, 그리고 교인들의 평균 연령 증가로 이미 나타나고 있고, 점차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설교와 목회의 목표를 현재 다수를 이루고 있는 노령층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미래를 위해 붙잡아야 할 청년층에 맞춰야 할까?


교회 대부분이 허리 역할을 해야 할 40대가 약하고 봉사자들은 고령화되는데 그들을 이어 교회를 세워갈 젊은 헌신자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재개발이 시급한 도심지역에 있는 교회들은 그 현상이 너무나 심각하다.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를 예측해 보며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유럽의 교회들처럼 되고 말 것이다.


AI와 4차 산업혁명


사회의 혁명적 변화는 멀리 있지 않다. 벌써 똑똑한 AI 로봇이 취업하고 수많은 직장인을 거리로 내쫓고 있다. 이미 수도권의 성도들은 안정된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고 복잡한 계획(교대)근무로 인해 교회를 든든히 섬기는 일꾼이 될 수도 없고 예배조차도 지키기 힘들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더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나안 교인들은 늘어갈 것이고 목장이나 전도회 등 교회의 공동체성은 약해질 것이다.


급변하는 목회환경에 목회자들의 선견적인 대처가 아쉽다. 전통적인 목회로는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울 수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라져가는 60대, 70대의 헌신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신앙의 바통을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일이다.


최근 다양한 전략들이 시도되고 있다. 현용수 박사의 ‘쉐마’운동, 자녀들의 교육부서에 따른 교구 사역으로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가정)와 위대한 신앙 멘토 바울(교회)의 바통을 잇는 디모데로 키우고자 하는 박상진 교수의 ‘유바디’운동, 교회가 선포하는 진리의 말씀(노랑)을 모든 세대가 함께 가정에서 사랑(빨강)으로 풀어내 보려는 ‘오렌지 예배’, 가정과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세대통합 커리큘럼 운동인 김대진 목사의 ‘싱크와이즈(Syncwise)’ 등은 새로운 목회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저작권자 © 고신뉴스 KN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