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성찬에 참여해도 됩니까?

입교하지 않은 어린이들도 성찬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던데요. 유아세례받은 그 때부터가 아니라 초등학생 정도가 되면 가능하다는 주장인데요. 아무 것도 모르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동일한 관점에서 성찬참여를 허락해야 한다는 주장인 듯 한데요. 그래도 입교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성찬참여를 허락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요? 반대로, 예전에 고신총회에서 입교한 학생들에게도 공동의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입교했으면 공동의회 투표권을 주는 것이 당연하고요.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유아성찬, 혹 어린이 성찬이 논쟁거리가 아닌데 미국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지금까지 논쟁하고 있습니다. 유아에게 성찬을 베풀 수 있다는 쪽과 베풀어서는 안된다는 쪽이 맞서고 있습니다. 물론, 대세는 참여시켜서는 안된다는 쪽이 우세합니다. 소위 말하는 입교식이 성찬참여를 허락하기 위한 성례이기에 그 전에는 참여시켜서는 안된다는 쪽이 우세합니다. 유아에게도 성찬참여를 허락한다면 굳이 입교식을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지요.


지적하셨듯이 아무 것도 모르는 유아에게 세례는 베풀면서 왜 성찬을 베풀지 않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세례는 허락하고, 성찬은 허락하지 않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의 표징인 세례와 성찬을 동시에 누리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입니다. 둘 다 참여하게 하든지, 둘 다 참여하지 못하게 하든지 해야 하지 않냐고 주장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면 언약의 표징을 다같이 누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재세례파(지금의 침례교)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판단하고 믿을 능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판단능력이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합당하다고 믿습니다.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불신자들의 자녀들과 구별시키는 것이 합당하고, 그들이 언약백성이라는 표를 받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유아세례는 우리의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시위하는 것이기에 너무나 은혜로운 예식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나의 믿음과 고백에 달렸다고 하는 믿음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유아에게 성찬을 베푸는 것도 허락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례를 받았으니 성찬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자녀들이 언약을 누릴 권리를 왜 제한시킵니까?


유아세례받은 이들에게 성찬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완전한 언약백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답해야 합니다. 사실, 입교라는 말이 오해를 줄 수 있습니다. 입교는 말 그대로 교회에 들어오는 즉, 회원이 되는 예식이라는 뜻이니까요. 입교해야 비로소 교회회원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유아세례로 이미 부모와 마찬가지로 언약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입교식을 공적신앙고백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입으로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찬도 언약백성이라면 누구나 누릴 당연한 권리이지만 세례와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세례는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지만 성찬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살핀 후에성찬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1:28). 성찬은 자기를 살필수록 더 큰 유익을 얻습니다. 그 살피는 것이 자기내면을 엄밀하게 성찰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얼마나 열망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죄가 있다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하고요.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제177문답은 성찬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과 나이에 도달한 자들에게만 허용된다고 말합니다.


고신헌법에서는 세례와 입교를 14세 이상에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14세까지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이면 이미 알만큼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부모와 함께 성찬상에 나아가서 지켜보면서 그 은혜를 누릴 날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적신앙고백 할 때까지 성찬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언약백성됨을 유보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약백성됨을 더 풍성하게 누리기 위해 조금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복된 기다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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