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시작하는 방식, 알고 싶습니다

요즘 교회력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새해 첫 주일예배를 신년예배라고 부르는데요. 이렇게 연초를 세상방식으로 신년예배라고 부르기보다는 주현절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말이 있던데요. 16일이 주현절이라고 하던데요. 성탄절이 주중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주현절도 주중에 오기 쉬운데요. 도대체 주현절을 지키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해를 시작하는 교회 나름의 방식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새해가 시작되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텐데요.


주현절(主顯節)에 관해 물어왔네요. 주현절은 주님의 현현’(Epiphany)을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성탄절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성육신을 풍성하게 축하하던 절기입니다. 사실, 주현절은 서방교회에게는 낯선 절기입니다. 주현절은 동방교회의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주현절이 먼저 만들어졌지만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이 생겨나면서 주현절이 점차로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주현절은 세속적인 방식의 새해맞이 때문에 더 많이 잊혀져 갔습니다. 그런데 주현절의 의미를 잘 안다면 동방교회를 존중하는 것이 되겠지요. 예배때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서방교회의 전통이지만, 니케아신경을 고백하면 동방교회를 존중하는 것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대교회가 처음 만든 절기는 부활절기였고, 그 다음으로 만든 절기가 성탄절기인데요. 성탄절기는 준비절기인 대림절과 축하절기인 성탄절과 주현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탄절은 일반적으로 서방교회가 지킨 절기인데 1225일을 성탄절로 지키지요. 1225일은 로마제국의 이교도들이 지키던 축제를 세례준 것입니다. 로마의 이교도들은 1225일을 무적의 태양 출생일로 정해서 축제를 즐겼습니다. 태양빛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무적의 태양이 부활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연종교의 모습이지요. 기독교회는 이날을 피하지 않고 이 날에 세례를 주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의 태양이시라고 축하하면서 기뻐했습니다. 토착화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주현절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방교회 지역인 이집트에서는 로마와 달리 16일에 태양을 숭배하는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집트도 여러 가지 신들이 많았지만 어느 듯 태양신이 가장 중요한 신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에 동방교회는 그 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날을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리는 날로 축하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이 주현절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 것입니다. 16일에 시작된 주현절은 최소한 2달 가까이 진행됩니다. 부활절기의 준비절기인 사순절에 바통을 넘겨주기까지 진행됩니다.


주현절의 독특함이 무엇일까요? 동방교회는 주현절에 예수님의 탄생뿐만 아니라 동방박사들이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한 것,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으신 것,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 등을 축하했습니다. 성자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나신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 초기를 묵상하는 절기로 삼았습니다. 세례받으심이 공적인 나타남이라고 본 것은 맞는 말입니다.


교회력에서는 대림절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교회는 성자께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을 묵상하면서 교회력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이게 세속 시간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연말과 연초에 묵상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묵상은 한 동안 계속됩니다. 인위적으로 구분한 11일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하여 우리 가운데 찾아와주신 주님으로 인해 우리의 날들이며 우리의 몸이 새롭게 됩니다.

목사들은 1, 2월의 목회와 설교주제를 찾기에 골몰합니다. 뭔가 쌈박(?)하게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주현절을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성육신을 묵상하는 시간들을 가지는 것이 좋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한 해의 시작시점에 신자들이 막연한 기대에 들뜨고, 막연한 불안에 떨기보다는 성자께서 이 낮고 낮은 곳에 임하셨다는 것을 묵상한다면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잔잔한 일상을 기뻐하신다고 하니,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몸도 기쁘게 받으신다고 하니 새해를 시작할 용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저작권자 © 고신뉴스 KN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