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강에 음악이 흐르면’을 읽고서

최성숙 시인이 9월에 첫 수필집을 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이 마음속에 일어났다. 그는 러시아 선교사이기도 하니 그의 글이 동서양 글로벌 속에서 싹튼 것임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의 부군(이헌철 목사, 모스크바장로교회 시무)은 거창고등학교 시절부터 필자와 친구이다. 고신대학 졸업동기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처녀수필집으로 세계에 흩어져있는 독자들 앞에 첫선을 내 보인 것이다. 그의 첫발을 신뢰하며 페이지를 넘겨보자.

지상에서 그리는 천국의 모습 : 천국은 꿈의 실체이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는 작가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의 모습을 땅에서 그려내는 꿈꾸는 화가이다. 천국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그 묘사가 다채로울 수 있다. 그는 주께서 주시는 글쓰기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않고 하늘을 향해 꾸준히 증진했다. 그리하여 그림을 그리듯 자신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수놓는다. 언젠가 낙엽을 채집하여 노랑과 빨강 그리고 조화로운 갈색으로 변신한 나뭇잎을 부드럽게 코팅하여 MK(선교사 자녀)들에게 보내주었다. 나의 두 자녀들도 그의 편지가 든 컬러봉투를 받고서 즐거워했던 천진한 모습이 기억에 새로워진다. 아이들이 생일을 맞으면 으레 한국의 가을 낙엽을 받곤 했다. 거기엔 유명 시구나 단장된 말씀 한 구절이 들어있었다.

그는 빈집에서도 천국을 꿈꾸며 그리길 소원한다. 소외되고 아픈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다가간다. 어디서나 집은 천국의 작은 표상이다. 사실 천국은 집에서부터 출발한다. 집 없는 천국은 실체 없는 신비주의와도 같다. 최성숙 시인은 현대인의 집을 소재로 하여 회화적인 글을 완성시키는 귀재이다. - ‘빈 둥지에서 -

특히 렘브란트를 지켜보는 그의 예지와 감상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는 나사로의 부활에서 어두움의 배경을 발견하며 빛의 세계로 이동하면서 크리스천의 신앙철학을 어둠과 빛에서 발견하고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자작나무 숲을 향한 가장 러시아적인 안목으로써 렘브란트를 향해 어두움의 그림에서 천국을 훔친 화가라고 대견스럽게 표현한다. - ‘천국을 훔친 회가들에서 -

자연과의 첫사랑을 일반은총으로 노래하다

그에게 비쳐진 자연은 그저 황홀하기만 한 정체된 정물화가 아니다. 20년 이상 삶의 황금기에 아름다운 인도네시아와 볼가강이 직류과 곡류로 흥겹게 흘러가는 러시아 선교지를 섭렵하였다. 이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볼만한 자연세계를 그의 눈동자 안에 담은 작가라고도 지칭할 수 있다. 고향인 거창에서 시작된 수려한 경관은 그의 감각기관을 최대한 발휘하여 마침내 첫사랑을 경험하기에 이른다. 이성에게서 첫사랑을 찾지 않음은 마음속에 꿈꾸는 진실한 사랑을 자연에서 찾고자 하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대변해 준다. 그는 자신의 구원이 특별한 은총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생애의 통과의례와 같은 첫사랑은 일반은총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최 시인의 예술세계가 자연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대목이다.

산 중턱을 가득 메운 구름 속에 우뚝 선 와길 산(인도네시아 자바 말랑 지역에 있는 산)은 나에게 첫사랑의 인연을 맺게 해 준 내 마음의 산이다. 주님이 내 마음에 찾아오신 것처럼 확 트인 하늘 아래 내 고향 산천과 흡사한 시골 내음새가 물씬 풍기는 와길은 나에게 맑은 영혼들을 만나게 한 나의 벗, 나의 친구다. 와길 산과의 만남은 나의 옛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첫사랑에서 -

그에게 첫사랑은 늦게 찾아온 셈이다. 그의 글을 읽는 이에겐 첫사랑의 모습이 다채롭다. 최성숙의 자연사랑은 그의 고향의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고향 잃은 사람들에서 -

새로운 언어를 찾는 시인의 에스프리

최성숙 시인의 글쓰기의 진가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의 개성으로서의 에스프리는 그의 내면의 정신과 기도에 있다고 본다. 그의 글쓰기는 화가적인 면모로써 캔버스에서 시작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교회공동체의 사모로서 그리고 현재 선교사로서의 사명 곧 열정에서 비롯된다. 교회의 사모로서 한발 늦음과 파송 받은 선교사로서 한발 앞서야 함이 글쓰기의 내면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열정과 겸손은 사모로서 선교사로서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덕목이다. 한쪽은 비워두어야 하고 다른 한쪽은 채워두어야 한다. 비와 채에 관해서 아무도 정답을 제시할 순 없으나 독자들은 사모로서의 전통적인 정숙함과 선교사로서의 첨단적 사고를 양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치 시계추의 진동과도 같이 그 오르내림과 좌우의 움직임이 민첩해야 함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 ‘사모님은 무엇 하는 사람이에요?’에서 -

그의 또 다른 에스프리는 현실 사역의 공명작용에 있다. 그의 기도의 메시지는 읽는 이의 마음의 울림으로 감사의 기도를 손꼽는다. 기도는 신불신간에 마음과 정성과 몸을 내어주는 가치 있는 노동이다. - ‘공명효과에서 -

그의 글쓰기는 현실 소재를 넘어 꿈의 실체를 실현하는데 있다. 꿈의 실체와 실현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뫼비우스 띠를 연상시킨다. 현실적으론 영원히 분리된 듯 하나 꿈이 실현될 날을 바라보며 꾸준히 다가서는 당참이 존재한다. 꿈의 실천을 위해 한 스텝씩 걷는 걸음이 느릴지는 모르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간증한다.

그의 간증이 글이 되고 그의 글이 다채로운 유미주의를 이룬다. 이러한 문장의 유미체가 최성숙이 일궈낸 새로운 언어를 찾는 순례자로서의 정점이 된다. 그가 꿈의 실체를 보기까지 부단한 노력은 마침내 화가가 되는 길이었다. 그는 30년 이전에 지녔던 꿈을 이룬다. 그가 섬기고 있는 모스크바장로교회는 교회당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고 문화센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 유지를 위해 매주 토요일에 문화교실을 열어야만 한단다. 교회존립을 위한 의무조항으로 통한다. 교회에서 문화교실을 시작한지 3회째 되면서 교인들은 다양한 재능을 기부했다. 그는 그림지도를 맡아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지도할까를 고민할 정도로 행복하다. 본 수필집의 간행도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꿈꾸는 계절에서 -

시에 대한 감상

최성숙 문학에 담겨진 계절은 주로 봄과 가을로 물들어 있다. 봄은 수필로 통하고 가을은 시로 읊조리는 정겨운 시인이다. ‘가을 아침은 가을 아침에 문득 풀벌레와 햇빛, 코스모스와 오갈피나무를 제재로 노래하길 원한다. 마침내 갈잎은 살갗이 타들어가며 피가 숭숭 배어나도록 뜨거운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듯 붉은 낙엽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에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어머니의 품으로 환치시킨다. 거기 어머니의 나라는 러시아(동토)의 땅에서 눈물과 사랑과 좁은 길의 서정이 가득한 추위를 극복하고 가나안을 향한 노정을 연출한다. 어머니에겐 삶의 땀과 향기가 충일하고 기도와 밀알의 모습이 배어있다. 그는 어머니의 심장으로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시엔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사역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비장함이 숨 쉰다. 동시에 독실한 크리스처니티 신앙고백을 엿볼 수 있다. 본 수필집 다음엔 그가 못 다한 미션의 시집 한권이 나오길 여기 코스타리카의 해거름 녘에 고즈넉이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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