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친구목사가 집필한 ‘성경으로 풀어낸 사도신경’ 17과를 공부하다가 자연 속에서 알게 된 단순한 지식이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시골에 살았던 이라면, 아니 한 두번 장작불을 피워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로 인해서였다. 완벽한 교회가 없는 요즘, 가나안교인이 많아지는 이 시대에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라는 제목을 어떻게 표현하고 성도들에게 소개할까를 생각할 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 장작불이었다. 아무리 거세게 타오르던 장작이라도 한 개비를 꺼내어 따로 내어두면 얼마 있지 않아서 금세 그 화력은 다 살아지고 연기만 피우는 타다만 장작개비로 전락하고 만다. 열 번, 아니 백번을 실험해 보아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교회가 타락했다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혼자 신앙생활을 해보려고 교회를 뛰쳐나가는 것은 결국 이 타다만 장작개비와 같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교회라는 불꽃 속에 있을 때에만 성도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이 세우신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손발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몸에서 떨어져 나가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분명 오늘날 교회들은 문제가 많다. 사도바울이 생존했던 그 시대의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렇게 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5장 25~27절).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셨고 주님께서 보호하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려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2절에는 이렇게 그 고백을 하고 있다.
“이 교회는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된다. 이 보이는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가족이다. 일반적으로 이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장작불이 되어 온전히 타올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다음에는 이제 혼자서도 가능하다. 숯덩이는 혼자 떨어져도 재가 될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어 성령으로 온전히 타올라 땅 끝까지 나아가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되어 이 땅이 주의 교회가 되기까지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