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 예화를 안 할 수 없나요?

설교듣는 것이 고역일 때가 많습니다. 성경해석도 해석이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부분이며, 더 나아가 예화를 드는 것이 듣기 너무 힘듭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인이 교회와 목사를 욕했는데 그 다음 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는 예화를 들었을 때는 아무리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하더라도 화가 났습니다. 예화를 들으면 누구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뻔하게 알 수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힘듭니다.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예화도 식상하고요. 설교자가 왜 그렇게 예화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예화가 성경진리를 비춰주기는커녕 더 어둡게 만들기 쉽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요? 차라리 예화가 없는 설교를 듣고 싶습니다.


예화가 없는 설교를 듣고 싶다고요? 설교가 점차로 잔소리가 되어가고, 예화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예화를 창문에 비유하곤 합니다. 창문이 없는 집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반대로, 창문으로만 이루어진 집이 있다면 그것도 어색할 것입니다. 숨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에서 예화는 없어도, 너무 많아도 곤란합니다. 예화사용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설교 한편에서 몇 개의 예화가 들어가면 좋을까요?


예화로 드는 것들이 너무 비현실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미국 어느 동네에서하는 말로 시작하는 예화가 얼마나 상투적입니까?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먼 옛날 이야기일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화집에서 예화를 인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되도록 피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예화집을 아예 보지 않겠다고 작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속에 있는 예화는 너무 진부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이 사용되고 있기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굳이 예화를 들라면 성경 안에 수많은 예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즘에는 예화를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이게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면 너무나 쉽게 예화거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기사나 사건 사고들이 수없이 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 분명한 출처를 확인해야 합니다. 근거없는 말들이 너무 많이 떠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설교에서 말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무책임한 것입니까? 소위 말하는 음모론에 근거한 것들을 떠들어 대어서는 안됩니다.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언급도 그렇고,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해 예화를 드는 경우도 흔합니다. 문제는 특정한 예화를 들면서 그것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특수한 것을 너무 쉽게 일반화시킨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십일조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복주셨다고 하는 것도 얼마나 일반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성경의 사건들, 즉 예화로 사용할 수 있는 사건들을 언급할 때도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건들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기적이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될 것이라고 오해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소위 말하는 축복과 저주가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반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발생한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반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가장 좋은 예화거리는 바로 우리 곁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잔한 이야기들이 가장 좋은 예화거리입니다. 목사는 신기한 일들이나 자극적인 사건들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잔잔한 일상에 촉수를 들이대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언급하셨듯이 신자들이 겪은 문제들을 너무 쉽게 판단해서 말하므로 교인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고 난 경우나 질병을 죄와 바로 연결시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와 교회에 해를 끼치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이런 벌주셨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 예화를 들으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설교를 들었는데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고 예화만 생각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설교를 위해 사용된 성경본문은 생각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이런 경우에 목사가 예화를 잘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화는 성경본문의 진리를 선명하게 비추기 위해 사용하는데 예화가 진리를 비추어주기는커녕 말씀과 진리를 덮어버리는 상황이 되면 안됩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됩니다. 예화다운 예화를 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예화를 찾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고, 교인은 자신의 삶을 예화거리로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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