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미투’(Me Too)는 매우 낯선 단어이다. 미투운동은 “2006년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인 소수인종 여성, 아동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피해자들끼리 서로의 경험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하며 용기를 내어 사회를 바꿔갈 수 있도록 창안한 것이다. 우리사회도 천만관객 영화의 감초역할을 했던 배우를 비롯해 여러 유명 인사들이 ‘미투’에 연루되어 대중매체에서 축출되었다. 그동안 쌓은 명예와 인기 그리고 부를 한 순간에 다 잃어버렸다. 최근에는 유명 정치인들이 ‘미투’에 연루되어 직위를 잃어버렸고, 어떤 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사회가 공인(公人)에게 ‘미투’에 대해서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단체들이 ‘미투’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2차 가해에 대해서 엄중한 대처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이 땅의 밑바닥에는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교회는 어떨까? 어릴 때부터 목사는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여자, 돈, 명예’이다. 목사의 세계와 거리가 먼 단어인 것 같았다. 요즘에는 여기에 ‘건강’이 들어간다. 우스갯소리로 ‘7계명을 범하면 목회를 다시 할 수 있지만, 건강을 잃으면 목회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네 가지 중 선배들이 목회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것은 아마 ‘여자’, ‘이성’과 관련된 일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간혹 ‘아무개’ 목사가 7계명을 범해 목회를 그만두었다(쫓겨났다)는 소문이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들려왔다. 우리 총회는 교회의 공인인 목사와 장로 그리고 신학교 교수에 대해 7계명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교회를 성장시켰다 할지라도, 훌륭한 학자라도 7계명을 범하면, 인정사정없이 면직 또는 제명시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소문이 없다. 최소한 우리 고신 목회자 중에는 7계명을 범하는 사람이 없어 잠잠하다면 정말 ‘할렐루야’이다. 하지만 교계 현실은 아닌 것 같다. 많은 목회자들이 7계명을 범해도 교회가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전별금을 주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포장하여 목회지를 옮기거나, 심한 경우에는 선교사란 이름으로 교회를 사임시키는 경우가 있다. 당장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처럼 교회와 목사 모두에게 이롭고 좋을는지 모르지만, 교회의 거룩성과 복음의 순결성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 앞에 바를까, 자신과 확신이 없다.
예수님은 ‘이성을 보았을 때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이미 7계명을 범한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 말씀의 잣대를 갖다 대면 우리 중에 누가 고결한 목회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마는 최소한 현장이 있고, 물증이 있고, 피해자가 있다면, 교회가 7계명의 정신을 바르게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겉으로는 성인군자처럼 행동하면서 내면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했던 공인과 같은 삶을 산다면, 기독교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우리 헌법해설(유해무)은 ‘제7계명’(대137;소70)을, “하나님께서 제7계명에서 요구하시는 의무는 몸, 생각, 감정, 말, 행동에 있어서 순결함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순결을 보존하는 것이다. ... 부정한 모든 경우를 피하며 그런 유혹들을 저항해야 한다. 우리와 이웃의 정결을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보존해야 한다”라고 해설한다. 이 해설에서 ‘저항’이라는 단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수님도 모든 유혹에 ‘저항’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 지체 중 범죄하는 눈과 손을 빼어내고, 찍어 내버리라고 하셨다. 이번에 서울특별시 시장의 ‘미투’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특히 목회자들이 여자, 돈, 명예의 유혹에 ‘저항’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 국회의원은 전국 시도지사 집무실에 있는 샤워실, 침실을 철거하자고 발언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우리 교회들도 유무의 차이가 있겠지만, 교회 내 목양실의 샤워실, 침실을 전부 철폐하자. 목회자들도 인간이다. 정욕과 탐욕의 유혹 앞에 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유혹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미리 제거하는 게 지혜일 것이다. 둘째, 교회 강단 언어를 순화하자. 강단에 설교의 언어가 아니라 이방인의 언어가 범람하고 있다.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정제되고 절제된 설교자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총회 차원에서 목회자 후보생과 강도사, 목사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성교육을 시행하자. 마지막으로 교회의 당회와 노회가 회원의 7계명 범죄를 두둔하고 감싸기보다는 단호하게 대처하여 거룩한 풍토를 조성해 나가자. 내가 좋아하는 욥의 고백을 함께 나누면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성적 유혹에 대해 피 흘리기까지 ‘저항’하기를 소망한다.
“내가 내 눈과 약속(언약)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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