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목사/서울제일교회

그로부터 한 2년 정도가 지나서 였다. 용정에 팀을 안내하고 있는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음성을 듣는 순간 , 어, 이 목소리??? 한국말인데, 그런데 한국도 아니고 조선족 말도 아니고 북한말이었다.


"김동춘 선생 맞습네까?" "예, 어디십니까?" "여기, 조선 ○○입네다"

아니, 이게 무슨 말, 북한에서 직접 전화가 오다니...


"혹시 누구십니까?" "여기 두만강 초소 소대장이요"

엥. 두만강. 소대장. 그럼 북한 군인인데...


"아 어 예. 무슨 일입니까?" "여기 할마이가 두만강 넘어간다는데 내가 우에 보내겠음둥. 근데 김동춘선생이 인민폐 500원을 줄 수 있다는데 줄 수 있겠슴둥. 준다면 건너 주겠슴둥" "예, 일단 건너게 하세요~~"


공포감을 감추고 애써 담담히 대답했다. 알고보니 2년전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보낸 교수부부 중 할머니가 두만강을 넘어 온다는 것이었다. 내 이름을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고 '김선생'으로 호칭을 했었는데 어느새 내 풀네임을 알고 있었고 내 전화번호도 챙겨갔었던 것이다. 우와아, 중국 공안 빰치는 할머니이셨다.


두만강 북한쪽 초소 소대장에게 대담히 나를 팔아(?) 건너려고 한 것이었다(^^). 할머니를 바꾸어 달라고 했다.


“김선생님, 죄송합네다. 너무 급박해서 그만......” “예, 잘 알겠습니다. 예전 그 ○○○ 분에게 조치를 해 놓을테니 우선 건너세요!”


알고 보니 당시 북한 초소장은 그런 식으로 돈을 받고 도강을 많이 시킨 것이었다. 나중 그것이 문제되어 두만강 초소장이 싹 다 바뀌었고, 해안경비 책임자의 경우 집 장판에 수천만원의 중국 돈이 발견되어 99발로 총살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한 주 뒤 연변 ○○땅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왜 다시 오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할아버지가 방광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아버지 감사합니다~~’ 외마디를 외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중국에서 다사 돌은 벌어 손자손녀들을 위한 양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주여~. 할머니와 다시 복음과 빵을 나누어야겠구나. 마침 할머니를 급하게 간병인을 구하는 집으로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2년 정도 복음으로 교제를 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 추운 밤에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두만강을 넘을 때 강물이 아랫도리 바지를 스며들어 피부에 닿을 때 그 말할 수 없는 촉감. 하늘에 묵묵히 떠서 비추던 초승달, 가까이에 있었지만 아득하게 느껴진 북한 쪽 두만강 둑방에 서 있던 총 멘 초소장... 그리고 2년 뒤 불현 듯 받았던 북한 초소장의 전화... 휴~ 식겁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죽음에 대한 아픔. 아, 주님... 우리 민족의 눈물을 닦아 주소서. 아, 통일이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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