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 20주년 기념 학술대회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회장 김윤태 교수)종교개혁 500주년과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을 주제로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가졌다.

대회에서는 김영한 기독학술원장과 조봉근 광신대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자로 나서 학회의 지난 20년 역사를 돌아보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 진행된 분과 강연에서는 김은수(백석대) 유창형(칼빈대) 장호광(안양대) 윤형철(개신대) 박사가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뱅과 관련한 주제를, 박찬호(백석대) 이신열(고신대) 임영동(백석대) 현재규(장신대) 박사가 츠빙글리와 루터 등 종교개혁자를, 이상웅(총신대) 이상은(서울장신대) 조영호(안양대) 박영범(서울신대) 박사가 종교개혁과 오늘날의 이슈에 대해 발표했다.

마틴 루터의 우상숭배 이해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이신열 교수는 루터는 우상 숭배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었는가?’ 문제를 제기하며 우상 숭배의 정의 및 원인과 결과, 영적 우상숭배, 그리고 우상숭배와 아디아포라에 대한 견해를 고찰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우상숭배 이해

먼저 이신열 교수는 루터에게 있어 우상 숭배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신성을 물리적 형태를 지닌 가공적 객체에 전이시키는 모든 행위로 보았다라고 전했다. 모든 사람의 양심이 서로 다른 종류의 하나님을 양산해 낸다는 것이다.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또 다른 하나님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우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공통점은 이들 모두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과 공로를 기뻐하고 우리가 행하는 공로에 의하여 즐거워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한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그는 또 루터는 우상숭배나 미신을 가장 강력한 여왕이라고 불렀다라며 우상은 인간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니고 있어 주의가 요구됨을 강조했다.

비록 물리적으로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내적으로 섬기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영적 우상 숭배에 해당된다.”

이신열 교수는 비록 외형적 그리고 내적 우상의 형태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말씀론적, 기독론적, 칭의론적 우상숭배 이해

이신열 교수는 루터의 우상숭배에 대한 이해를 말씀론적, 기독론적, 칭의론적 차원에서 나누어 고찰했다.

먼저 말씀론적 차원에서 루터는 영적 우상 숭배는 사실상 하나님에 대한 모독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희생 제사를 드리지만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아니하고 이를 왜곡되게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두고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루터에게 영적 우상 숭배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종교적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이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이에 순종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를 왜곡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둘째, 루터는 기독론적 차원에서 우상숭배는 영적으로 부패 타락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대신에 우상에 의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려는 이들의 자만한 행위는 곧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믿음에서 멀어지는 행위와 동일한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떠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예배는 곧 우상 숭배라고 밝혔던 것이다.”

여기에 그가 주장하는 영적 우상 숭배의 의미, 즉 그리스도를 주목하지 않고 그에 대한 믿음 없이 드리는 모든 예배가 곧 우상 숭배라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마지막으로 칭의론적 우상숭배에 대한 루터의 견해는 하나님의 은혜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의 구원이 주어지며 특히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수용하게 될 때 이 은혜는 칭의라는 구원의 구체적 행위를 불러일으킨다.”

이 교수는 결과적으로 루터는 칭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인간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고. 문제는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루터가 주장하는 칭의론에는 인간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결정적인 역할을 차지한다. “공로(merit)로 대표되는 선행(good works), 업적 (performance), 자선 (charity), 기부(donation), 고행(penance) 등의 모든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들은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효력을 지닐 수 없다. 이런 행위들은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인간의 내면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들은 단지 가증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이유에서 루터는 구체적으로 교황이 추구했던 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죄 용서함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불경건한 종교 또는 사고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우상 숭배와 아디아포라

이 교수는 마지막 고찰로서 우상 숭배와 아디아포라의 문제를 다루었다.

루터는 한 때 자신의 비텐베르크 동료이었던 칼슈타트의 성상파괴론에 맞서서 기독교적 성화나 성상들이 사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우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들이 파괴되거나, 남겨져서 폐화되거나, 또는 사용될 수 있다고 보는 아디아포라적 견해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루터에게 있어 성화와 성상은 단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거나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신열 교수는 루터의 아디아포라 관점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었는가?’에 주목했다. 루터가 형상의 문제를 아디아포라로 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우상숭배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 모든 것을 판단할 자유가 주어졌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주장이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신열 교수는 루터는 죄가 이제 완전히 해결되었고 율법의 요구에서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죄의 과격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루터의 이런 주장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은 앞서 언급되었던 영적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분리라는 이원론적 사고이며, 영적 세계에 적용되는 십자가의 신학은 현실에 상존하는 문제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현실세계의 형상의 문제도 사실상 인간의 믿음에 영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루터는 중세 로마 가톨릭이 추구했던 영광의 신학의 경우 인간의 믿음이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것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사고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날 이신열 교수는 루터가 주장하는 아디아포라는 우상의 독이 이미 제거되었다는 전제에서 비롯되었는데 칭의 함을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죄인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 이 형상들이 여전히 사용된다면 어떻게 이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어떻게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가라는 의문 제기로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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