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의료선교사 맥라렌 학술대회

서울 세브란스병원은 초대 신경정신과 원장 맥라렌 교수의 서거 60주년 맞아 그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1114일 세브란스병원 서암강당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맥라렌 교수를 삶과 신앙을 기억하고 참가자들은 헌신적인 그의 사랑과 섬김을 다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맥라렌의 생애와 활동을 주제로 민성길 장로(연세대 명예교수, 강서교회)호주장로회의 한국선교를 주제로 이상규 교수(고신대)가 발제를 맡아 각각 강의했다,

민성길 장로는 그의 탁월한 지적 능력, 열정적 신앙, 왕성한 봉사활동, 많은 글쓰기, 그리고 신비롭기까지 한 의학철학 사상, 그리고 영성 정신의학은 계승 발전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교사 맥라렌, 한국을 품다

찰스 맥라렌(Charles Inglis McLaren 1882-1957) 교수는 1911년 부인 제시와 함께 한국에 입국 초대 세브란스병원은 신경정신과 원장을 맡았으며 한국인의 영혼까지 사랑한 의사로 그는 한국교회에서는 한국이름 마라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민성길 장로는 맥라렌 교수는 단순한 의사가 아닌 한국에 온 호주장로교 의료선교사로 그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위해 수감되고 1942년 강제 추방될 때까지 32년간 한국에서 사역하였다고 소개했다.

일찍이 호주선교병원이었던 진주 배돈병원에서 사역을 시작한 그는 세브란스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로서 진료, 교육, 연구, 그리고 많은 사회봉사활동으로 사역했다. 명문 멜본의대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젊은 맥라렌 꿈은 나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해외선교사가 되는 것이다였으며 결국 의료선교사로서 한국에 찾아왔다고.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 맥라렌

민성길 장로는 선교사 맥라렌의 업적만이 아니라 의사 맥라렌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맥라렌의 업적을 한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왕성한 연구와 임상적 실천을 통해 더욱 신앙심 깊은 정신과의사이면서 의철학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앞선 심신의학 이론과 의학사상을 많은 논문을 통해 호주의 의학잡지에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그가 자신에게 맡겨진 한국 선교에 있어,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였다.”

실제로 맥라렌 교수는 일반 질병과 정신질환에 대한 깊은 기독교적 이해를 바탕으로 질병치료가 영혼구원과 같다는 신념을 가지고 한국인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고 한다. 더 나아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서구 의학을 가르쳐 주었고 사랑으로 한국인 후계자를 교육하였다,

맥라렌 교수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당대의 영국 정신의학, 비엔나의 정신분석, 그리고 정신장애에 대한 영적 접근에 대해 연구하고 한국인 후계자(이중철 교수 등)를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신앙의 동역자, 부인 제시 맥라렌

특별히 그의 부인 제시 맥라렌(1983-1968)의 활동도 눈부시다. 그녀는 멜본대학 영문학 석사출신이다. 그녀는 학생 때부터 맥라렌과 같이 학생신앙운동의 멤버로 같이 활동하다가 선교사로 평생을 같이 하기고 하고 결혼하였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 한국의 진주와 서울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특히 한국인 고아 셋을 양녀로 키워 결혼까지 시켰다. 진주에서는 야학교와 유치원을 경영하였으며, 서울에 와서는 이화여전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며 신촌의 새 교정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의 YWCA 창립 등 여성운동을 도왔다. 또한 그녀는 영국 왕립학회 사서 자격으로 많은 기독교문헌을 번역하였다.


출옥성도 맥라렌 성도

맥라렌 교수는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는 공중위생, 축첩, 매춘, 노동 문제 등 한국 사회개혁에도 헌신하였다.

사실 민성길 장로가 맥라렌 교수의 삶에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출옥성도라는 것.

그는 일제 말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한국인들이 일본의 압제에 굴복하지 말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라고 역설한 소수의 선교사들 중의 한분이었다. 그는 다른 선교사들이 모두 한국을 떠났지만 끝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태평양전쟁이 터지던 날 진주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후 부산에 연금되어 있다가 1942년 추방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겪은 모든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하나님의 은총이었으며 특권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로 고신교회와 꼭 닮아 있는 그의 열정적 신앙과 믿음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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