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법통 포럼 ‘초대교회와 고려파 교회 비교 연구’- 황권철 목사 ‘고려파 교회, 초대교회의 순교적 전통신앙 이어받아 태동’

▲ 2020년 5월 4일 열린 경남노회 192회 정기노회 (사진 경남노회 제공) cookie0228@hanmail.net
▲ 2020년 5월 4일 열린 경남노회 192회 정기노회 (사진 경남노회 제공) cookie0228@hanmail.net


고려파교회연구소(소장 황권철 목사, 밀알교회 담임)는 2020년 5월 4일 자로 제6회 법통 포럼 발표자료를 담은 논문집 제6호 ‘고려파교회연구’를 발간했다. 이 포럼의 주제는 ‘초대교회와 고려파 교회의 비교 연구’다. 이 포럼은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COVID-19, 우한 폐렴) 사태로 열리지 못했다.


이 논문집에는 초빙 강사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의 ‘서양 교회와 한국교회의 기도’, 발제 논문 황권철 목사의 ‘초대교회와 고려파 교회의 비교 연구-주남선과 거창지역 교회지략 중심으로’, 성희찬 연구위원(작은빛교회 담임목사)의 ‘초창기 한국장로교회(1884~1945년)와 헌법 개정’, 강종환 연구위원(가음정교회 장로)의 ‘국가의 인권보호제도 및 각종 인권정책에 대한 소고’의 내용이 실렸다. 이 가운데 황 목사의 논문을 발췌해서 정리했다.


“주남선 목사는 신학자도 아니고 순수하게 교회를 섬긴 목회자이다. 그러나 그의 교회관과 목회 철학은 초대교회 사도들의 정신과 너무도 일치한다.”


황권철 목사는 “이 논문을 쓰게 된 목적은 고려파 태동기에 가진 그루터기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다.”라며 “주남선의 애국 운동과 본토 거창교회를 섬긴 목회 정신은 유대 예루살렘에서 지상교회를 태동시킨 사도 정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라고 주장한다.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2장을 중심으로 지상교회가 태동하는 신약시대 초기 역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려파 교회는 아직 성경 신학적으로 정의한 체계화된 이론이 없다. 이에 동 연구소에서는 한상동과 함께 고려파 교회를 섬긴 설립자들 중심으로 기술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주남선 목사의 ‘거창지역 교회지략’에 나타난 교회관으로 제한했다.


황 목사에 의하면 초대교회는 주님 탄생에서 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476년까지 잡는다. 또 초대교회는 내면적인 교회의 역사를 중심으로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부터 그레고리 1세가 즉위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논문에서 말하는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서 태동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사도들의 사역이 종료된 시점까지이다. 이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 원형이다.


로마 제국의 박해는 1~4세기 동안 일어났다. 2세기경 초대교회는 안팎으로 어려움에 있었다. 외적으로는 제국의 박해를 견뎌야 했고, 내적으로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오염시키는 각종 이단과 싸워야 했다. 이 시기에 교회를 어렵게 만든 이단은 가현설, 영지주의, 말시온주의, 몬타누스주의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교리를 체계화하며 기독교를 공격하는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주 목사는 1909년에 설립된 거창교회 초기 신자가 되어 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집사, 장로, 전도사로, 또 두 번에 걸친 담임목사로 시무한 한국 기독교계 거목이다. 나라 잃은 시절 형제가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나라를 사랑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켜온 애국자이다. 그는 또 1946년 9월에 한상동 목사와 함께 고려신학교를 설립한 초대 이사장이며, 고려고등성경학교와 거창성경학원을 설립해 교육에 지대하게 공헌했다. 그의 삶의 여정은 거창교회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주남선(朱南善)의 본명은 주남고이다. 주 목사는 옥중에서 이름을 남고에서 남선으로 바꾸었다.


‘거창지역 교회지략(敎會誌略)’은 주남선 목사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거창지역을 비롯한 함양, 합천 등 경상남도 서북부 지방의 교회지(敎會誌)로서 이 지방 교회의 연원에 대한 역사적 자료이다. 주남선 목사는 후일에 잊고 훼손되기 쉬운 이 지방 기독교 연원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초기에 설립된 이 지방 28개 교회의 1940년대까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황 목사는 “한국 교회사적으로 보면 한일합병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교회 말살을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제도권의 모든 교회가 배교하여 일본 천황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로 전락했으나 주남선과 한상동을 중심으로 한 고려파 신앙을 가진 교회들이 항거하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왔다.”라고 밝히면서 고려파 교회 주역을 맡은 주남선 목사의 교회관을 초대교회 사도들의 사역과 비교해 새롭게 조명했다.


황 목사에 따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시련과 박해로 성장했다. AD 64년 로마 대화재 사건은 기독교 박해의 불씨가 됐다. 네로는 로마의 대화재를 기독교인의 소행으로 만들어 기독교를 박해하므로 로마에 있었던 수많은 기독교인이 순교했다. 한국교회 역시 태동과 아울러 일본 제국주의의 박해를 받았다.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았으나 한국교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박해를 받았다. 한국교회 역시 일제의 박해로 인해 부흥하고 성장했다.


황 목사는 “한국교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배교의 늪에 빠졌으나 거룩한 씨, 소수의 그루터기였던 고려파 교회가 폐교된 평양신학교를 복원한 고려신학교를 설립함에 따라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지킴으로 초대교회 정통성인 공교회의 사명을 다하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베드로와 바울뿐 아니라 모든 제자가 대부분 순교의 제물이 됐다. 초대교회는 주님의 제자로 훈련받은 12사도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고려파 교회 역시 초대교회 순교적 전통신앙을 이어받아 태동했다. 고려파 교회는 일제 강점기 때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출옥 성도들로 인해 태동했다. 주남선 목사는 한상동 목사와 함께 진리 파수의 순교 정신을 지닌 한국교회의 사도적 인물이다. 그는 신사참배 반대로 일제 말 6년여의 옥중 고난을 겪고 광복 후 신앙과 신학의 순결을 위해 고려파 운동을 전개하고 고려신학교를 세워 진리를 파수하고 전수하는 데 생애를 바친 인내와 극기의 목회 지도자이다.


초대교회는 지상교회의 시작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회중들의 모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그리스도 교회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시켜 나아가는 게 그 목적이다. 이 교회에는 사도성, 통일성, 보편성, 거룩성 등 4가지 속성이 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배, 선교, 교육, 섬김, 사귐 등 5가지 역할이 있다.


황 목사에 따르면 거창지역에 고려파 교회를 세운 주남선 목사는 1931년 2월 22일에 거창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죽는 날까지 거창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삶의 여정은 숭고한 신앙절개와 자기희생 정신의 구현이다. 일본 신사참배 반대로 1940년 투옥당해 1945년 8월 17일 평양 형무소에서 석방될 때까지 가시밭길, 형극의 길이었다. 6.25 한국 전쟁 때에도 거창교회를 사수했다. 공산군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후유증으로 1951년 3월 23일 63살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주남선 목사의 이 같은 목양사역은 초대교회 사도적 신앙을 계승한 것이다.


황 목사는 “초대교회 사도들은 순교적 사명을 감당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웠다. 이 같은 신앙과 신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온 고려파 설립자들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인들에게서 받았다. 특히 주남선 목사의 목양적 교회론과 온유한 삶으로 살아온 겸손함과 세속에 때 묻지 않는 십자가 도만을 전하는 복음의 능력은 고려파의 개혁주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 준 아름다운 신학 전통이다. 주남선 목사는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겼다.”라며 “이 같은 고려파 설립자들의 정신과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으로 목양하고 성경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개혁주의 신앙전통을 오늘날 고신 교회가 바르게 사수해가야 한다.”라고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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