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정기학술심포지엄서 제기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한국기독교역사학회는 2019년11월 2일(토)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부속창고 강의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2019년 정기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서울=기독교보) 이국희 기자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한국기독교역사학회는 2019년11월 2일(토)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부속창고 강의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2019년 정기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서울=기독교보) 이국희 기자

(서울=기독교보) 이국희 기자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한국기독교역사학회는 11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부속창고 강의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2019년 정기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에서 이재근 교수(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기독교: 상호관계의 유형과 특징’, 이혜원 교수(연세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개신교 선교사: 미화서관을 중심으로’, 최상도 교수(호남신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기독교 여성: 임시의정원 여성의원을 중심으로’란 부제로 각각 발표했으며, 김광재(국사편찬위원회) 김은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성은(대구한의대)이 각각의 발표에 대해 차례대로 논찬했다.


이재근 교수는 3.1운동 이후 상해에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기독교와 맺은 관계를 몇 가지 주제, 즉 임시정부 내부 기독교인 요인들, 임시정부 외부의 국내외 기독교인 후원자들, 임시정부 관내 교회와 학교와 임시정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폈다.


이 교수는 “임시정부의 수립과 유지, 항일 투쟁, 승인 노력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참여율이 아주 높았다. 이는 이 운동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3.1운동에서 드러난 양상을 그대로 계승한다.”라며 “특히 상해 임시정부 초기 정부 각료와 의정원 의원에 선출된 기독교인 비율이 특별했다.”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3.1운동의 경우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5%도 되지 않던 시기에 3.1운동 관련 피검자 전체의 17.6%를 차지했다. 특히 여성만 따로 계산할 경우 65.6%나 됐다.


이 교수는 “기독교인의 높은 참여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독교적’ 정체성은 의심스럽다. 기독교인 다수의 적극적인 ‘참여’와 ‘주도’와 ‘지배’가 있었다고 해서 이 운동이 ‘기독교’ 운동이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지적하면서 “임시정부의 기독교인은 이 운동에 기독교인이기에 참여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인이기 때문에 참여한 것인가? 답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임시정부와 기독교 관계에 다원성과 차이가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최상도 교수는 발표에서 “남녀평등을 기독교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라고 전제하고, “조선에서 근대적 남녀평등사상의 새 지평을 열어준 건 동학사상이다. 동학의 근본 교리인 인내천(人乃天)에서 유래하는 평등사상은 조선 사회 여성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명적 내용이었다.”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독교 복음은 여성들의 능력과 창의력을 일깨웠고, 가정에서 교회로, 학교로, 사회로 나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임시헌장에 명시된 여성 관련 조항의 제9조 공창제 폐지 역시 기독교 여성 운동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제하고, “한국인들에 의한 공창제 폐지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조직이 1911년 여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였다.”라며 “기독교만의 기여는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기독교인은 여성에게 이름을 주어 해방의 길을 걸으며 남성과 동등하게 주체적인 시민으로 설 수 있도록 사상과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라고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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