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철 목사, 신간 출간

한상동, 고신에서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아직도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황권철 목사(밀알교회)가 집필한 한 권의 책 한상동과 신사참배 반대운동’(황권철 지음/ 도서출판 한길로/ 5,000)이 출간됐다.

저자는 고신의 후예들까지도 서서히 한상동 목사를 잊어가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일본제국주의가 한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 행했던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나 이일에 반대한 자들은 한상동 목사와 함께 한 고려파의 주역들이며 한상동 목사는 진정한 한국교회 거룩한 씨 그루터기(6:13)로 사명을 다하고 간 고신의 뿌리인 고려파의 설립자임을 힘주어 강조했다.

한상동 정신 필요

69회 고신총회 때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출옥성도들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정부 보훈처에 신청하는 헌의안이 상정됐다. 그동안 한상동 목사에 관해 출판됐던 기존 도서들은 그 숫자는 많았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이 교회 안에서 읽혀지는 신앙서적이거나 지엽적인 부분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저자 황권철 목사는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도록 애국운동 관점에서 이 책을 서술했음을 밝혔다.

한상동 목사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특히 우리 고신인들에게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상동 목사의 삶과 신앙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특별하게 생각한 부분으로 한상동 정신을 꼽았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 목사는 한상동이 주장한 고려파 정신은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세워 나라와 민족을 세우는 진정한 애국운동이라면서 신사참배로 폐교된 평양신학교를 복원할 수 있는 당위성을 가진 자는 신사참배와 무관한 출옥성도들을 중심으로 고려신학교를 세웠고, 일본 제국주의 신사참배에 반대운동을, 나아가서 3.8 이북의 무신론 공산주의를 배격한 당시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세속적 교권의 물량주의를 거부한 자들이라고 밝혔다.

일본 제국주의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다양한 견해와 입장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을 지켜 왔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걸어온 노선이 다르다고 남을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한상동 목사가 걸어온 길은 그 시대의 여러 사람들과 다른 사명자의 길을 걸어왔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한상동은 최덕지와 함께 하면서도 회개한 자에게는 너그럽게 관용하는 포용주의 마음을 가졌다면서 주기철의 나라사랑과 개인 신앙은 탁월하나 교회 공동체인 한국교회를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한상동은 생각을 조금 달리 했고, 박형룡과 한경직의 지성과 나라사랑도 귀하고 위대하나 한상동은 하나님의 언약사상과 절대주권신앙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는 점이 한상동의 탁월함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74월에 설립한 고려파교회연구소는 1년에 두 차례 포럼을 개최하고, 지나간 역사를 회고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오고 있다. 이에 황권철 목사는 그간 다섯 차례에 가진 포럼을 통해 교회사에 나타난 고려파교회의 현주소를 확인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향후 신약과 구약에 나타난 언약사상과 고려파교회를 비교 연구하므로 개혁주의 신앙전통을 바르게 이어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황권철 목사는

고신대학교와 신대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연세대와 연신원에서 상담학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문학 석사를 받았다. 경남법통노회 노회장을 비롯해 고신총회 유지재단 이사를 역임했고, 고려파교회연구소를 설립했으며 현재 밀알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겨오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에 조명해 본 기도생활>을 비롯해 <성경핵심개요>, <하나님의 주권>, <고신태동 역사이해> 등 수많은 저서가 있다.

고려파교회연구소와 법통노회

지난 2016년은 경남법통노회 백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백주년 기념행사로 국내 개척교회를 세우고, 해외에는 미국 톨레도 지역에 안디옥선교교회를 세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회 기독교문화연구원 주관으로 경남법통노회 백년사를 집필해 한국교회사를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는 안목을 열어 주었다. 경남법통노회는 한국교회사와 맥을 같이 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01년에 평양신학교가 세워졌고, 1907년에 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하여 목사로 장립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를 조직했고, 1912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됐다. 4년이 지난 후 경상노회는 1916년에 경북노회와 경남노회로 나누어졌고, 2016년에 경남노회는 백년을 맞았다. 그간 일본 식민지로 있으면서 신사참배 강요로 인해 제도권의 한국교회가 배교하므로 하나님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인 경남노회는 법통정신으로 사수해 온 고려파교회를 통해 한국교회 정통성을 회복에 힘썼고, 이 같은 사실을 한국교회에 알리고 다음세대에 바르게 전수하기 위해 고려파교회연구소를 설립했다.


경남법통노회 태동 약사

1948921일 김길창 목사가 자신이 시무하는 항서교회에서 불법으로 사조경남노회가 모여 제51회로 명명했다. 이것이 한국교회 분열의 불씨가 되었다. 1949419-23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제35회 총회가 열렸다. 이때 총회는 사조경남노회를 만든 김길창 목사에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총회 전권위원회는 1949527일자로 한부선 일파와 고려신학교와 관계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기존 경남노회를 경남노회(부산지방), 경중노회(마산 통영지방), 경서노회(진주 거창지방)3분할 할 것을 결의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경남노회장 이약신 목사는 1949613일자로 전권위원회 결정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항의서를 발표했다. 이때 경남노회가 법적 정통성을 지닌 노회임을 구별하기 위해 경남법통노회라고 불렀다.(법통포럼 제3호 논문집 pp. 6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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