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 다양한 프로그램 준비

코로나는 일상 속에 죽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한 묶음이란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바라보면 한 없이 슬프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들여다보면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인생의 나침반이다.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촉매제가 된다. 초기 기독인은 ‘나그네’로 불렸다(벧전 1:1, 17; 2:11). 나그네는 오늘을 살지만 오늘에 머물지 않는다. 영원(본향)을 사모한다. 죽음에 겁먹지 않는다. 지구별 소풍을 끝내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알아서다.


죽음이 바르게 회복되는 자리에 인간 존엄과 품위가 있다. 그 때 삶은 예술이 된다. 메멘토 모리 기독시민연대는 기독교 상·장례 모델을 찾아낸다. 죽음교육을 통해 죽음지수를 높인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안내하는 지팡이가 된다. 죽음의 사회·생태 환경을 일구는 일에 활동목표를 둔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의미 있는 모임이 시작을 알려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 대표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의 송길원 목사가 이끄는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가 바로 그것!


지난 10월 10일,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의 공식 출범에서 송길원 목사는 “삶과 죽음은 한 묶음이어야 옳습니다. 저희는 코로나 19가 던져준 죽음의 성찰과 생명 회복의 길을 모색해 보려 합니다. 거기에 보다 야무지고 풍성한 삶이 있을 것을 믿어서입니다. <메멘토모리 스쿨>을 통한 죽음교육, 엔딩플래너와 함께하는 <해피엔딩의 상·장례>, 웰다잉을 넘어서 <힐다잉(Heal-dying)의 생태환경>을 가꾸는 일을 목표로 합니다. 일회성 행사나 조직이 아닌 문화공연 시리즈와 줌(Zoom)을 활용해 시·공간을 뛰어넘습니다. 국내만이 아닌 해외까지를 망라해 지구촌을 향합니다. 더 이상 죽음은 기피해야 할 주제가 아니며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살려야 합니다”고 말했다.



비대면 시대에 줌(Zoom)과 SNS(페이스북)의 공유로 국내를 넘어서 해외까지 수 백 명이 함께 한 이 날 행사는 목회자뿐만 아닌 평신도 리더들이 각 분야를 망라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또한 1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문화 운동으로, 지금까지 ‘깃발 들고 구호를 외치는 광장의 소리가 아니라 소리 없이 삶 속에 스며드는 새로운 대안모델임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가자들은 비대면으로 진행된 행사를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며 댓글로 응원했다.“죽음에 대한 성경적 세계관을 실제 삶에 적용해서 문화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열렬히 응원합니다.”, “국적도 없는 엉망진창인 장례가 바뀌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교회에서도 죽음 교육이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품격 있는 장례문화를 기대해 봅니다.” 등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했다.


#. 무염습 장례가 나왔다. 작은 결혼식에 이어 품격 있는 가족장이 늘었다. 코로나 19는 신풍경이다. 조용하면서 진정한 애도와 치유의 해피엔딩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국적 없는 장례식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 가족들의 갈등 증폭제 구실이 기도 했다.


우리나라 한 해 사망자는 내년 30만 명(3조 6천 억), 2035년 50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1인당 장례비용은 1200만원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2~5배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50년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장례비용은 640조원(12조 8천 억)에 이를 전망이다.


#. 현재 우리나라의 죽음지수는 OECD에 가입한 나라 가운데 최하위에 가깝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죽음의 질은 주요 40개국 중 32위로 평가된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다.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년에 1만 3,670명이 자살한다. 사망원인 5위다. 유언장 작성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유언장이 부재하니 유족 간 재산분쟁이 끊이지 않고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를 떠안고 빚을 지는 경우도 많다.


#. 교회는 죽음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상·장례 조차도 개인사로 치부되어 목회적 돌봄에서 소외되는 일이 많았다. 이런 반성을 기초로 죽음의 질을 높이고 상·장례를 개선하는 시민운동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교회와 목회자에게만 맡겨둘 수 없어 학계, 경제계 일반 평신도들이 함께 나섰다. 그동안 한두 번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전 교계로 확산시키게 된 것은 처음이다.


#. 참여하는 인사는 권영걸(전서울대 미대학장, 소셜디자인), 유현준(건축가), 하태경(정치인), 이만수(체육인), 박효진(교도선교), 김형석(철학자), 신은경(방송인), 장제국(학계), 박선주(미술), 석창우(화가), 채수일(신학자), 김신(법조인), 김종회(국문학), 이규현(목회자), 정은상(창직가),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4기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장), 김재평(한국방송장비산업진흥협회 회장), 이동춘(시인 목사, 샘문학회 부회장), 전창림(홍익대 교수), 한성열(고려대), 문용호(화이통 방송대표), 홍경일(양탕국아저씨, 문화선교사역자) 등 다양하다.


#. 국내만이 아닌 해외의 인사들까지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 해외의 좋은 사례 연구와 정보의 교류, 문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다.


정택영(프랑스), 허태성(일본), 최병렬, 전종준, 임용우, 장세규(미국), 강성대(캐나다), 남우택(뉴질랜드), 정은일(남아공), 이순복(시에라리온), 임종표(케냐), 김조이(말라위), 임재택, 송민호(캐나다)


#. 활동목표도 매우 분명하다. 초청의 글에서 밝힌 대로 ‘메멘토모리 스쿨’을 통한 죽음교육, 엔딩플래너와 함께하는 ‘해피엔딩의 상·장례’, 웰다잉을 넘어서 힐다잉(Heal-dying)의 생태환경을 가꾸는 일을 목표로 한다. 출산휴가와 같은 임종휴가의 법제화도 눈에 띤다.


#. 이들은 1회성 행사나 사람 세워 조직 만들기가 아닌 진정한 뿔푸리 운동이 되기 위해 모든 행사를 문화공연형태로 이끈다. ‘죽음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 모토다. 발족대회와 함께 하는 이번 시리즈의 주제는 “상당했다고요?”다. 더 이상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전환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용어개선이 첫 번 째 화두인 셈이다.



용어개선에 대한 제안


모든 사회의 변화는 용어를 바꾸는데서 시작된다. 가장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상당했다’에 시비를 걸고 나선 이유가 있다. 유모차가 아니고 ‘유아차’가 맞다. 폐경기(肺經期) 조차도 행년기(幸年期)기와 갱년기(更年期)로 부르면 훨씬 이기기 쉬워진다. 일본 정부는 2004년에 환자들의 인권을 고려해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이날 제안된 용어에 관련된 내용은 이렇다. 시민연대는 이 작은 출발로 해서 용어개선 뿐 아니라 잘못된 관습을 바꾸어가는 일을 하나하나 발표해 갈 것이다.



1. 상 당했다.→ ‘임종하셨다’


‘달맞이’ ‘해맞이’ 하듯이 죽음도 맞이해야 옳다. 죽음에 끌려가거나 또 ‘당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죽음을 ‘맞이했다.’ ‘다스렸다’는 의미에서 “임종하셨다”가 훨씬 의미가 크다.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했다는 뜻으로 임종이 기독인의 품격 있고 신앙고백이 담긴 자세를 보여준다.



2. 삼우제→ “첫 성묘”

삼우제(三虞祭)는 고인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다. 삼우제의 ‘우’는 ‘헤아리다 근심하다 걱정하다 염려하다’라는 뜻이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셔야 하는데 이승에 미련이 남아 북망산천을 방황할까봐 제사를 지내 달래서 보낸다는 의미다. 장례를 치르고 집이 아닌 산소에서 지내는 첫 번째 제사를 초우제라 한다. 두 번째 날 지내는 것을 재우제라 하며 삼일 째 삼우제를 지낸다. 삼일장인 경우 그 날이 5일째 되는 날이 많아서 삼오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3.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빕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후 가는 곳을 ‘저승’이라 하고 그곳을 ‘명부(冥府)’라고 한다. 명복(冥福)은 ‘어두운 곳에서의 복’을 뜻한다.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이다.



4. 미망인→ “유가족” “(고인의) 부인”


미망인(未亡人)이란 ‘같이 따라서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다. 동양의 순장(旬葬)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자신의 남편이 죽었을 때, 그 부인도 같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는 장례풍습을 말한다. 이러한 풍속은 고대 중국의 은나라와 이집트에서 유행했던 풍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 22대 지증왕 3년(주후 502)까지 있었던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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