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원고는 고신대 신학과 송영목 교수가 발표한 논문으로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한 글 전문이다.

-편집자 주-

앞으로 교회 사역은 목회자(klerikos)와 일반 성도(anthropos laikos) 간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열린 유기적 협업, 기계적 조직화보다는 건덕과 인격적 관계의 강화, 그리고 주종관계가 아닌 종의 리더십을 통한 역동적 제자화를 요청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여성도의 재능과 역할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03년경부터 여자 집사를 허용하는 남아공 개혁교회(GKSA)2016112일부터 열린 특별 총회에서 여성 목사 안수건(이하 여성 안수’)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복음주의나 개혁주의 진영에서도 여전히 논란 중인 여성 안수에 대한 올바른 결정은 교단의 전통이나 상황적 필요가 아니라, 무엇보다 성경 주석적 연구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관련 신약 본문에 대한 주석적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서로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자부한다. 이 글은 여성 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구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를 차례로 다룬다. 이 글에서 여성 안수는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함을 논증할 것이다.

1. 여성 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유니테리언파(Unitarian)는 물론, 중앙집권화된 교회정치 체제 대신 개교회의 결정을 중요시하는 회중교회에서 여성 안수가 일찍 시행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스위스 개혁교회(1918), 프랑스 개혁교회(1949), 미국 장로교회(PCUSA, 1956), 화란 개혁교회(NHK[국가개혁교회], 1966; GKN[개혁교회], 1969; 해방파, 2017), 남아공 화란개혁교회(NHKA, 1976; NGK, 1990), 미국 기독개혁교회(CRC, 1995) 등 개혁파와 장로파에서도 여성 안수가 허용됐다. 한국의 경우 1907년 장로교 독노회가 조직될 당시 목사와 장로는 남성으로 제한됐다. 장로교 22회 총회(1933)에서 성진중앙교회 김춘배목사가 여성 안수를 청원했다가 철회한 사건이 있었다. 장로교 24회 총회에서 박형룡박사는 김춘배목사가 남성 안수를 2천 년 전의 특정 풍습으로 본 것은 잘못이며, 남성 안수는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했다. 1930년에 감리교회가 여성 안수를 허용한 이래, 재건교회가 최덕지 여전도사를 (명예) 목사로 인정했다(1951). 감리교(1930), 기장(1974), 예장 통합(1994), 예수교성결교(2003), 침례교(2013), 성공회, 루터교, 예장 대신(백석, 2009), 기하성(교단 설립 때부터),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교단 설립 때부터), 구세군, 브니엘교회, 독립교회 등이 여성 안수를 시행 중이다. 이들 교회는 여목사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여성 총대의 비율을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기독교연합신문의 여론조사(20167)에 의하면, 전국 신대원생 85%가 여성 안수를 지지하며, 여성 안수를 시행하지 않는 교회의 신대원생들의 찬성 비율도 과반이었다(참고. 고신대 신대원생 100%, 총신대 신대원생 52.5%, 합동신대원생 56.3%). 따라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회에서 허용하는 것은 시간상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특별히 여성 안수를 불허하는 교회의 신학생들이 관련 본문에 대한 심도 깊은 주석적 연구를 접해봤는지 의문이다.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유교문화의 양존음비(陽尊陰卑)에 근거하여 가부장적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근본주의 교회에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그리고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요인으로 ‘NCC여성위원회와 같은 여권(女權)신장 단체의 활동과 더불어 WCC의 결정을 드는 경우도 있다. 여권신장과 상관없이, 미국의 경우 신식민지 지역에 여성의 선교 목회활동을 허락하게 된 것을 여성 안수의 계기라는 주장도 있다. 신앙과 세속 문화를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선 이들이 방어적인 전통적 신앙고백주의와 카이퍼의 반명제적(antithetical) 사상에 근거한 반()문화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에는 여성 안수를 넘어,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LGBT)에게도 목사직을 허용한 장로교회도 있다. 종합하면, 여성 안수를 찬성 혹은 반대한 배경에는 유교사상, 여권신장 운동, 성경해석방법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 구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

1:26-28은 남녀의 평등성을 강조하기에 여성 안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녀평등이 여성 안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남녀는 동등하지만 상이한게 사실이며, 이것은 성 차별(sexism)이 아니라 성 구별이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으므로(2:18), 여자는 남자의 보조자 차원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 있는가? ‘돕는 자’(. 에제르; . 보에쏘스)는 이스라엘을 돕는 분이신 하나님에게도 적용되므로(참고. 18:4; 13:6), 여자의 열등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여사사 드보라(4-5), 여선지자 훌다(왕하 22:14), 여선지자 노아댜(6:14), 지혜로운 여인들(삼하 14:2; 20:16-22)을 통해서 볼 때, 비록 여성은 공직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신적 권위와 지혜로 의미 있는 지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리고 구약에서 여자는 회막에서 섬길 수 있었기에 제사장을 보조하는 역할도 감당했다(38:8; 삼상 2:22; 참고. 대상 25:5-6).

구약에서 여자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허용되지 않은 세 가지 이유는 짐승을 죽이고 제사를 드리는 고된 노동, 부정한 월경 기간, 그리고 이방 신전의 창기를 닮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여성 안수 지지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을 용납하셨고(5:25-34), 많은 정통 유대인들은 요람에서부터 월경하는 여인처럼 부정하다고 사마리아 여인을 간주했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고(4:1-42), 현대 목사의 직무는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수행하는 힘든 노동과 다르며, 신약에는 신전 창기(娼妓)의 문제가 사라졌기에 신약의 변화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 일부 특별한 경우에 여성이 활동한 것을 보편화시킬 수 없으며, 여성은 왕과 제사장같은 공적 사역에 종사할 수 없었다. 제사장은 선지자가 될 수 있었지만, 선지자는 (레위지파의)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제사장이 되려면 여성이 아니라 완전한 남성이어야 했다(21:17-21). 이 원칙에 근거하여 신약의 목사도 남성 가운데 선발되어야 한다고 적용하는 이가 있다. 이렇게 구약의 여성의 역할을 살펴본 것으로는 여성 안수의 성경적 의미를 결정하는데 여전히 역부족이다.

3. 신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

교회의 필요에 따라 여성 안수를 허용하거나 불허할 수 없다. 더구나 여성 안수는 페미니즘 운동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성경 해석에 근거한 결정이어야 한다. 복음서의 1차 삶의 정황인 AD 30년대에는 여성 안수에 관한 논쟁이 없었지만, 신약의 지역 교회가 설립된 이후 상활을 염두에 둔 바울 서신에는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교훈이 몇 번 나타난다. 신약 서신서에 의하면, 여성 안수는 구원론과 직결되지 않는 교회의 직제문제로 보인다. 그럼에도 여성 안수가 가볍게 취급될 주제가 아님은 이 주제는 성경관 및 성경해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3.1. 누가복음 8:1-3

8장의 여성들(마리아, 요안나, 수산나)은 소위 정착 제자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다닌 제자들이었는가? 과연 이 여성들이 여러 지역을 다니신 주님과 동행했는가는 분명치 않다. 개역개정의 번역처럼, 1절의 12제자는 주님을 따라다닌 제자들로, 2-3절의 여인들은 정착 제자들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1세기에 여성이 남성 스승을 장기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숙박을 같이했다며 큰 스캔들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사역을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펼치시는 동안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무렵 한시적으로 동행했던 것 같다(23:49). 그 당시 유대 랍비들은 여자를 제자로 삼지 않았지만(참고. 4:27) 여성의 후원을 받기는 했지만(참고. 유대고대사 17:33-45), 랍비와 달리 예수님은 측근의 여성을 훈련시키셨다. 그렇다고 하여 이 사실이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12제자들은 모두 남성인데, 구약의 남성 제사장의 역할과 유사하다(참고. 15:16). 주님이 남자 제자들만 선택하신 것을 1세기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양보곧 여자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다니면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아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한 일시적인 현상인가? 물론 주님이 제자 선택 시에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신 것은 옳지만, 이런 특수 상황에 사도의 남성성이라는 규범성이 있지 않는가? 주님의 승천 이후, 복음을 공적으로 증거하고 초대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담당한 것은 남성에게만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약의 선지자직은 일시적이었지만 남성이 담당한 제사장직은 종신직이었듯이, 남성 목사직도 종신직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가? 하지만 구약 제사장직이 아니라 선지자직이 신약의 목사직에 더 직결된다.

3.2. 사도행전 18장과 로마서 16:1

16:3에 의하면 브리스길라는 바울의 동역자’(쉬네르고스)인데, 이 명사는 목사였던 디모데(16:21)와 디도(고후 8:23)에게도 적용되었다(참고. 4:3의 유오디아와 순두게). 더욱이 브리스길라가 아볼로를 가르쳤기에(18:26) 여성이 공적 직분을 맡아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가?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차원이지 공적 설교가 아니다.

여성신학자들 가운데 겐그레아교회의 뵈뵈(16:1-2)사도혹은 교회의 대표자’(프로스타티스)로 보는 이가 많다. 그녀가 여자 감독이나 여집사(RSV, AEB, NEB)라는 주장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