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교회학교 아이들에서 장년까지 신앙교육·훈련 철저 필요

▲ 2018 기독교보 © 기독교보 이국희 기자
▲ 2018 기독교보 © 기독교보 이국희 기자


교회는 생명체다. 교회는 생명을 가진 나무와 같다. 따라서 건강한 나무가 시간이 지나면서 쑥쑥 자라듯 교회도 자라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는 성장이 멈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뒷걸음치고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다.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두 그러하다.


개체교회에 따라서 다르긴 하나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교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개체교회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거나 교인이 교회로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게 현실이다. 아예 교회를 떠나 다른 종교로 가든지, 홀로 신앙생활을 이어간다. 숫자적인 면에서 개체교회의 정체현상은 심각한 문제다. 교회 구성원이 역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청년들이 줄어들고 장년세대만 늘어간다. 교회가 늙어간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교회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개체교회 자체에서도 늘어나지 않아서다.


교회 건강 면에서도 긍정적이지 못하다.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대사회적인 봉사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통계가 나타나고 있다. 교회나 교계연합기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을 따라 이 일에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니라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 계속 대두되는 대형교회의 일탈행위는 이것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 규모가 작거나 크거나 상식과 법과 질서에서 벗어나는 교회의 모습은 교회가 교회이기를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회는 입에 담기가 민망할 정도의 언어로 교회를 욕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교회를 대적하고 무너뜨리려고 하는 무리들도 있다. 교회가 일반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다. 청년들은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떠난다. 그 중에는 직분자 자녀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이 교회로 다시 발걸음을 돌릴지는 미지수다. 더 이상 교회에서 희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3,40년 전보다 많은 면에서 발전하고 발달돼있다. 교회에 박사들이 넘쳐나고 계속해서 배우는 목회자들이 부지기수다. 일반성도들의 성경 수준도 상당하다. 눈만 돌리면 볼 수 있고 귀만 열면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시대다. 성경책도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교인들마다 1년에 한 번 이상 성경 통독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지역(개체)교회와 예배와 기도회와 각종 교회 모임과 설교 등이 홍수다. 기독교인이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갖춰졌다. 무엇이든 골라서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왜 교회는 힘을 잃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은커녕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주일예배 설교를 비롯해 수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 등 각종 교회 모임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한국교회 내에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수십 년 전의 그 교인(성도)이 지금의 그 교인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한다.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고 수많은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들었는데 삶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에서 잘못 가르쳐서 교인들이 안 변하는 것인가? 잘 가르쳤는데도 안 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인들이 제대로 배웠는데도 변화할 의지가 없어서인가? 어릴 때부터 제대로 신앙교육이 안 돼서인가? 한국교회가 사회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서지 못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혹자는 지금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전야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총체적으로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된다. 예수의 생명이 사람들에게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교회라는 나무가 한 때 무성해보였으나 지금은 시들시들하다. 뿌리가 얕아서다. 비바람이 쳐서 곧 넘어질 기세다. 이 땅의 교회가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안식을 주는 보금자리로 우뚝 서는 게 시급한 실정이다. 그럴 때 교회 밖의 사람들이 교회로 다시금 발길을 돌리고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청년 등 교인들은 발걸음을 멈출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교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모습은 결국 목사와 장로를 비롯한 교인들이 ‘성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작금에 일어나는 대형교회의 사태들은 교회 내에서조차 잘못됐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한다고 아우성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럴 기미조차 없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의 손가락질이 대형교회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총체적인 작품이다. 교인이 그리스도인과 성도가 되지 못하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의 은혜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로 넘쳐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못하고 그것을 삶에서 살아내고자 몸부림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의지도 없다.


한국교회가 변하고 미래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성도 개개인의 변화가 필요하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데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의지가 약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행함에서 괴리가 나타난다. 믿음과 행동이 별개다. 성도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생각의 틀, 가치관이 바꾸지 않고서는 생각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자손손 계승하고 미래의 희망을 보기 위해서는 철저한 신앙교육과 훈련이 요구된다. 이것은 장년뿐 아니라 교회학교 아이들과 전 세대에 걸쳐서 이뤄지는 게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한다고 강조하지만 그것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며 말씀으로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약했다는 인식이다.


성도들은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설교,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말씀을 찾아서 사냥한다. 설교가 마음에 와 닿으면 은혜가 됐다고 기탄없이 말한다. 문제는 그 감동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기도는 한다. 내 생각과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꿔달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생각과 행동을 바꿀 마음과 의지가 없다. 내 욕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한국교회가 이 시점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사회에 희망과 소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한국교회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 혹자는 왜 자꾸 한국교회의 희망을 말하지 않고 위기를 말하느냐고 제기한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망한다는 말 대신에 희망을 노래했다. 한국교회의 현실도 그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의 교인 수가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드러나는 현상은 태풍전야만큼 위태롭다.

한국교회가 개체교회마다 세상에 좋은 모습을 보여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지 않고서는 교인이 없는 교회 건물만 미래에 볼 수밖에 없다. 이에 성도들이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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