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결혼·언약의 가정·생육 번성의 성경적 의미 강조 필요

 2018. / 기독교보 © 기독교보 이국희 기자
2018. / 기독교보 © 기독교보 이국희 기자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개체교회의 교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과 교회들이 산 위의 동네가 되지 못하므로 사회적으로 몰매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들이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교단마다 교인 숫자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교회 숫자는 늘어나지만 교인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교인이 감소하는 이유는 교인들의 탈교회화가 가속화되고 교회 내 출산율이 사회의 낮은 출산율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주일(교회)학교 아이들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탈교회화는 썰물처럼 일어나고 있다. 개체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아예 교회와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오늘의 현실에서 교회들은 아직까지 실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교회 전반적으로 교인들이 줄다 보니 이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새롭게 개척되고 있지만 교인 100~200명 규모의 교회 숫자만큼 교인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교인들이 한꺼번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줄어들다보니 개체교회가 죽어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개구리가 서서히 데워지는 물에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교회의 출산율이 사회와 맥을 같이 하는데도 이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다. 교회 내에서 출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실정이다.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교회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교인 감소가 이뤄지고 있는 데도 성경 말씀에 따른 ‘생육과 번성’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인이 왜 결혼해서 언약의 가정을 꾸리고 출산의 복을 누리는지에 대해서 교회는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젊은이들을 향한 눈치가 한몫 하고 있다. 이 시대에 청년들이 결혼한다는 것, 더구나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 녹록치 못하다는 현실을 너무도 강하게 직시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를 잡을 여지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실제 생활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복이다. 물론 결혼했어도 물리적으로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이 말하는데도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결혼이 늦어지고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거나 한 명 정도에 그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출산보다 더 시급한 것이 결혼에 대한 생각이다. 사회 분위기, 사회의 환경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젊은이들이 아예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3월 21일 발표한 ‘2017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혼인건수는 한 해 전보다 6.1% 줄어든 26만4500건으로 1974년(25만9600건)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교회가 세속적 가치와 사회적 분위기에 동승해서는 교회가 교회로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교회는 예배, 사회봉사와 섬김, 전도와 선교, 양육, 교제 등에는 강조하면서 열정을 쏟고 있지만 정작 가정을 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아이들이 많이 태어날 때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2천 년대 이후 기독교인 가정과 교회가 생존을 걱정할 때가 됐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 때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애굽의 바로가 두려워했다. 지금은 저 출산으로 교회가 교인들의 숫자가 너무 줄어들어 걱정하고 있는 시대다. 그리스도인이 결혼과 출산과 믿음의 가정에 대해서 소홀히 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을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출산은 단지 개체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뿐만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있지만 이조차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비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날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셈이다. 그리스도인 가정, 교회 분위기에 젖어서 자란 교인들조차 산 위의 동네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랫동안 복음과 교회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빛과 소금의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교인들이 전도의 삶을 살아내는 것조차도 버겁고 그러한 삶을 보고 또는 복음을 듣고 교회를 찾는 사람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교회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지금도 복음과 교회를 몰랐던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들어온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에 잘 정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부 대형교회들의 사태로 이래저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조차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있어 지상의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자체적으로 위안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성도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


개체교회는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한 쪽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다른 쪽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덮어가려고 한다. 이 때문에 교회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는 목사 장로들이 더욱 한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성도들도 쟁점의 중심에서 비켜갈 수는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신앙교육의 부재다. 성경지식 전달의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도인의 성숙하지 않은 삶의 모습이 여과 없이 사회에 투영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산 위에 있는 동네의 모습이 아니라 뒷골목에서 일어날법한 저급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새해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여전이 2018년, 아니 이전부터 대두되어온 여러 가지 풀어야할 숙제를 안고 있다. 2017년 종교개혁, 교회개혁 500주년을 거치면서 종교개혁에서 부르짖었던 오직 말씀을 붙들자고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지만 여실히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교회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말씀으로 살아내려고 하는 몸부림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러한 여력을 내기에 너무 버거운 실정이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장년들과 청년들은 자신들도 말씀으로 살아내기 어려운데 자녀들, 주일학교 아이들을 말씀으로 길러내야만 하는 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한국교회 구성원들이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내려고 하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 없이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제대로 된 신앙교육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그저 그리스도인의 흉내만 내는 것은 아닌지 세밀하게 살펴야할 것이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이 ‘교회’ ‘그리스도인’ 자체가 믿음의 보증이 돼야만 한국교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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