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문교회 선교센터 개원 10주년 맞아

서울서문교회(담임목사 한진환) 선교센터(센터장 오병실 장로)가 개원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서울서문교회는 부활주일 오후 이주자 선교라는 귀한 사역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귀중한 사역의 현장인 서울서문교회 선교센터에서 개원 1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리고, 10년을 한 결 같이 이주자와 함께 해온 사역자와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서울서문교회 선교센터는 평신도들의 열심이 단초가 되고, 교회가 정책적으로 뒷받침이 되어 발전한, 쉽게 보기 힘든 교회선교의 모델입니다.

2007, 오병실 장로를 비롯해 서울서문교회의 몇몇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사역을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주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시대조류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주자 사역을 하기 위해선 이주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마침 이주자가 많은 경기도 광주 시내가 교회에서 3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처음 만난 이주자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마하복 씨(40)였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어깨가 골절된 그에게 병원을 알선해주고, 치료해줬습니다. 그러자 그를 통해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와의 만남이 시작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와의 만남을 위해선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시내에 월세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서문선교센터의 시작입니다.

광주시내엔 방글라데시 사람 외에도 베트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공간이 생겼기에 자연스럽게 방글라데시 사역과 베트남 사역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서문선교센터의 개원시기는 한진환 목사의 부임 시기와 겹쳐 있습니다. 한진환 목사가 서울서문교회에 부임한 주일날, 선교센터가 개원예배를 드렸으니까요. 한진환 목사는 강도사 시절을 서울서문교회에서 보냈습니다. 딱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맡고 있는 대학부와 매주 난지도 봉사를 다니던 그 때로요. ‘, 난지도가 살아서 계속 이어지고 있구나. 너무 감사합니다란 생각이 들 수밖에요.

지금은 외국인 형제 이게 더 시대에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개원 10. 처음 몇몇 평신도가 시작한 서문선교센터는 서울서문교회 선교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습니다.

서문선교센터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역자와 자원봉사자들입니다. 특히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역자와의 만남, 그리고 선교센터를 시작한 초기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선교센터는 발전은커녕 대부분 교회처럼 반짝하다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방글라데시 예배를 위해서는 방글라데시어를 할 수 있는 사역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 방글라데시에서 18년 동안 평신도사역을 하다 접고 철수한 사람과 연결됐습니다. 한유민 선교사입니다. 서로가 찾아왔던 사역자와 사역지였습니다.

단기선교팀이 베트남에 갔을 때입니다. 통역으로 나온 사람이 마침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경로로 살핀 결과 신실한 사역자였습니다. 초청해서 신대원에 진학시켰습니다. 그는 신대원을 졸업하고 베트남북부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베트남 이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베트남 총회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비용은 서울서문교회가 부담하는 조건으로요. 그렇게 베트남예배도 시작됐습니다.

서문선교센터는 많은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이주자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해 줄 의사는 물론이고, 주일날 예배 후 이주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주기 위한 식당봉사자도 있어야하고,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해 한글학교와 주일학교와 방과 후 학교를 열어줄 선생님도 필요했습니다.

다락방(구역)별로 자원해서 센터에서 봉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서 한사람씩 봉사자가 생기고, 그렇게 어느덧 봉사자는 70명까지 불어났습니다.

김지애 집사도 처음에는 다락방 따라 주방봉사로 선교센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센터에 도벽이 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 주중에 한 번 더 돌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방과 후 교실, 이름 하여 서문선교센터 수요공부방의 시작입니다. 학생은 단 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데려오고, 그 누구가 또 누구를 데려오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10명 정도까지 늘어났습니다.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봉사자도 늘어났습니다. 2015년 최대 피크일 때 5명을 기록할 정도로요(현재는 3).

강산도 변한다는 10. 김지애 집사도 변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대학원 특수심리치료학과까지 졸업한 것입니다. 덕분에 수요공부방 후 모래놀이치료라는 모래놀이 시간을 만들었고, 가족의 전폭적인 이해 속에 그녀의 귀가시간은 밤 1011시로 더 늦어졌습니다.

그녀가 느끼는 게 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보면 이미 바뀌어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면 할수록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 다 도구고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만져 가신다는 것을요

알음알음으로 손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합류해주신 집사님, 아이들 음식 사 먹이라고 헌금해주신 집사님, 음식을 해서 건네주신 집사님. 그러고 보니 꼭 자원봉사자가 아니더라도 서문교회 교인들은 선교센터에 어떻게든 연결돼 있습니다. 주일예배 대표기도 때에 선교센터를 위한 기도가 빠지지 않을 정도니까요.

개원 10. 방글라데시 교회가 개척돼 방글라데시 예배가 드려지고, 베트남 교회가 개척돼 베트남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헌금해서 센터의 상당부분을 감당할 정도로 자라나고 있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센터공간은 처음 시작 때보다 4배로 커졌습니다. 아니, 공간이 더 필요한데 아래층 PC방이 안 나가는 바람에 더 공간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서문교회 선교센터에서 세례를 받은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사람은 총 60명 가량 됩니다. 10년 동안 60? 한국기준으로야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수입니다. 10년 동안 1명 전도하기 힘든 곳이 방글라데시니까요.

서문선교센터는 한국에서의 이주자사역이 전부가 아닙니다. 선교센터 사역은 선교위원회의 사역과 연계되고 있습니다.

서문교회는 방글라데시에 소수부족 대상의 37개 교회 건축을 후원했습니다. 기준은 엄격합니다. 30명 이상이 모이고 교회부지를 마련한 경우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신학교를 집중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단기선교팀 방문시 고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을 호텔로 초청해 23일간 수련회를 진행하며 신앙을 점검하는 일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서문 선교센터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교센터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고국이 변하도록, 그분께서 일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으니까요.

한진환 목사는 교회들이 형편에 맞게 이주자선교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이주자선교를 함께 해 갑시다. 지역교회마다 그 지역에서 해나갈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지역에 맞춰 지역에 있는 이주민들에게 눈을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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