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폄하되고, 의미 없는 활동으로 여겨져 노예와 노비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혁주의자들이야. 그러나 또한 사람들에 의해 노동보다는 자본에 집착해서 경제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우상이 되었지. 기독교인들은 개혁주의자들의 노력이 잘 실현되도록 살아야지 개혁주의자들의 노력이 왜곡되는 것에 일조해서는 안 돼. 다른 말로 돈 중심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거야.


비록 지금 네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현상은 너에게도 적용되는데, 생각해보았니? 너에게 노동과 자본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네가 해야 할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나갈 때 따라오는 자본이어야 하는데 자본이 우선되고 해야 할 일은 수단이 되는 것 말이야. 학생인 너에게 있어 노동과 자본은 ‘공부와 성적’ 혹은 ‘공부와 성공’ 아닐까? 너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좋은 성적을 받아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네가 원하는 더 좋은 곳으로 진학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할 거야.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공부가 무엇인지 설명해준 적이 있었는데) 학생에게 요구되는 우선순위는 공부하는 것인데, 공부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함이거나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 혹은 일명 성공하는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야. 공부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것이고, 창조세계를 연구하고 알아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야. 공부 자체가 목적이고 그로 인해 따라오는 것이 성적 혹은 성공이지, 성적이나 성공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


‘공부로 인한 성적’이 ‘성적을 위한 공부’로 된 것이 ‘노동으로 인한 자본’이 ‘자본을 위한 노동’으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공부라는 것을 간단히 말하면 ‘신실하게 공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신실하게 공부하라는 말, 들어보았니? ‘신실하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소명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받은 소명을 신실하게 이루어가기 위해 말씀을 읽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하는 거야. 네가 받은 소명에는 ‘학생’이라는 소명이 있기 때문에 신실한 학생은 공부를 신실하게 하는 사람이야.


신실하게 공부하는 것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어. 첫째는 공부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과목을 공부하거나 나중에 대학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만드신 목적과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는 학생으로서 공부에 우선순위를 두어야한다는 거고. 공부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하루 종일 공부만 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거 알지? 재미있게 놀고 났더니 공부에 방해가 된다면 공부를 우선순위에 두었다고 할 수 없어. 오히려 공부하는데 힘이 날 수 있는 쉼과 놀이를 하는 것이 공부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할 수 있어.


인준아,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야.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 버린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해. ‘노동으로 인한 자본’이 ‘자본을 위한 노동’으로 왜곡된 것을 공부를 비롯해서 네가 하는 일, 혹은 네가 해야 하는 모든 일에 적용해 봐. 아마도 많은 부분이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 있을 거야.


결과 혹은 성공은 하나님께 맡기고 네가 해야 할 일은 매일 매일 신실하게 살면 되는 거고, 너에게 요구되는 구체적인 신실한 삶은 자녀로서와 학생으로서의 신실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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