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준아, 면죄부가 무엇인지 들어본 적 있지? 중세시대 때 로마 가톨릭에서 죽은 사람의 죄를 사해준다는 빌미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판매했던 거야. 죄로 인해 천국에 갈 수 없는 죽은 영혼이 면죄부를 구입하는 순간 천국으로 간다고 했지.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혹은 조상들의 영혼을 위해 면죄부를 구입했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인데도 사실인 것처럼 계속되었던 것은, 아마도 죄와 죽음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니 그 어떤 힘을 얻어서라도 해결하기 원하고, 정말로 해결되었는가보다는 그래도 무엇이라도 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라서 그런 건가봐.


요즘 어머니는 방송 뿐 아니라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보고 들으면서 기독교인들(당연히 어머니도 포함해서)이 죄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의 불순종에 대해, 그리고 법적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어. 그 누구보다도 죄와 고통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혹은 알고 있어야 하는) 기독교인들인데도 말이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도... 그 어떤 종교인보다도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비참함을 알고 있는데 왜 죄의 문제에 대해 계속 무뎌지는 걸까?


혹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한 용서를 잘못 적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떠한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해주신다고 하니까 죄에 대해 무뎌지는 건 아닌지! 죄의 비참함보다는 용서에만 관심을 두어서 그런 걸까? 하나님이 죄인을 부르시고 용서해주시는 것이 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야.


죄인을 부르시고 용서해 주신다는 말 중간에는, ‘죄인이 자신의 비참함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과 그 비참함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할 거야. 그렇게 용서받은 자는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죄에서 도망치려 하겠지. 그리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죄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위해 성령님께 간구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칠거고. 죄의 유혹에 눈을 돌리거나 죄에 기웃거리지 않겠지. 그 엄청난 용서의 대가를 아니까. ‘어차피 용서해주니까! 인간은 어차피 죄인인데!’라는 자세가 아니라!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용서받은 자들이 실수(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잘못된 결과가 생긴 것이 실수이지, 네 의지적으로 행동한 것은 실수가 아닌 거 알지?)가 아닌 같은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거나 점점 더 그 강도가 심해지는 것을 보거나 들을 때, 너의 마음은 어때? 혹시 너는 그런 일 없니?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했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하면서 무뎌진 일.


인준아, 그리스도인이라면 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단번에 죄에서 돌이키지 못하더라도 그 강도가 점점 옅어지고 결국에는 그러한 죄에서 벗어나도록 성령님을 의지해야 해. 그렇게 해야 하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같이 너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거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 반대의 상황이 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야.


인준아, ‘예수님의 죽으심은 값싼 면죄부가 아니야.’ 너를 죄에서 구원해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죽으심은 네가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해야 하는, 그리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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