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네덜란드의 종교개혁은 스페인의 정치적 멍에로부터 벗어나면서 순풍에 돛을 단 배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단다. 스페인 왕 필립 2세는 개신교회를 핍박했고 수많은 사람을 종교법정에 세워 화형에 처했어. 그 결과 스페인은 유럽 최고의 국가였다가 점점 쇠퇴하게 되지. 개신교인 가운데는 중산층 상인과 기술자가 많았는데, 죽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버렸기 때문이란다. 유대인까지 쫓겨나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 어리석고 잘못된 종교적 열심이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어. 네덜란드는 정치적으로 어엿한 독립국가로 자라가고 개혁교회는 지긋지긋한 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단다. 국가와 교회에 황금기가 찾아온 거지. 1580년대에 개혁교회 성도는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1618년 즈음에는 50% 정도나 되었다고 해. 네덜란드 개혁교회 성도들은 독립 전쟁 때 목숨을 다해 싸웠단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 싸웠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싸웠지.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교회를 버리고 개혁교회를 택하게 되었어.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든든히 서갈 수 있었단다.


사탄의 공격이 실패하고 중단된 것 같았어. 더 이상 핍박이 없고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사탄은 잠자고 있지 않았어. 사탄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교회를 공격해왔지. 그 공격은 교회 바깥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시작되었단다. 본래 신성로마제국에서는 각 나라의 종교는 다스리는 왕이 결정하도록 했었어. 네덜란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누구나 자신의 종교 때문에 핍박을 받지 않도록 했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택할 수 있었단다. 그렇다고 로마교회를 허용했다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그들을 핍박하지는 않았지. 국가나 왕은 인간의 양심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강요하지 않았지.


네덜란드 초기 북부지역 7개 주 연합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어. 교회는 국가의 통치 아래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오히려 국가는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는데, 결국 국가가 교회에 대한 권한을 더 많이 갖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 국가와 교회의 관계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나중에 ‘선택과 예정’이라는 교리적 문제가 일어났을 때 아주 어렵게 되지. 교회가 교리적 문제를 정부에 의존하거나 국가가 교회의 교리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단다. 어쨌든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어. 그것까지는 문제가 아니란다.


하지만, 교회에 인본주의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문제이지. 에스라무스로부터 시작된 인본주의 신앙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나라가 네덜란드야. 인본주의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철학이야. 인간을 죄인이라 보지 않고 선하고 능력이 대단한 존재로 본단다. 그들은 성령 하나님을 통한 중생(거듭남)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성)을 통한 중생을 가르쳤어. ‘의식화’라는 말과 비슷한 거야. 이런 사상은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과 달랐지. 칼빈이 성경에서 정리한 하나님 중심적 개혁신앙과 완전히 다르단다.


네덜란드 안에 이런 생각을 가진 신학자들이 서서히 머리를 들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예를 들면 코우른헤르트(D. V. Coornhert, 1522-1590)가 그런 사람이었단다. 그는 교회가 정한 신앙고백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회의 지도도 거부했지. 그는 신자가 믿음의 종류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선언했어. 다른 사람이 믿는 내용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고 주장했단다. 그는 관용을 말했어.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을 ‘관용’(Tolerance)이라고 해.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좋아했단다. 자신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개척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특히 지식인들 가운데 인기가 있었지. 인간의 삶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생각보다는 인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1천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지. 영국의 수도사인 펠라기우스(Pelagius)가 그런 자란다. 네덜란드에 인본주의가 교회 가운데 싹이 터 무성해지기 시작했어. 교회 가운데 가라지가 자라고 있었던 거지. 코우른헤르트의 생각을 이어 받은 자가 있단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아르미니우스’이지.


저작권자 © 고신뉴스 KN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