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

▲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종교개혁은 여러 방향으로 진행되었단다. 온건한 부류와 급진적 성향도 있었지. 로마교회는 종교개혁 신앙과 교회를 이단으로 핍박했단다. 루터나 칼빈의 책을 집에 두거나 읽으면 잡아가 옥에 가두고 죽이기도 했단다. 로마교회와 교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박해했던 거지. 신실한 성도들은 이런 박해 때문에 예수님이 빨리 오셨으면 바랐단다. 고난과 고통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야.

종교개혁 신앙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급진적인 무리도 있었단다. 이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었어. 어떤 사람은 환상을 보고 암스테르담(Amsterdam)에 예수님이 재림하고 새 예루살렘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지.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핍박을 받던 무리들은 그 예언을 듣고 좋아하며 따랐단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고통 받는 자들을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했어. 어떤 사람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단다. 로마교회를 지지하는 정부를 폭력으로 무너뜨려도 된다고 생각했지. 로마교회와 정부는 사탄의 조정을 받고 있다고 여겼으니까! 그들은 폭력으로 암스테르담 시를 점령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정부, 곧 새 예루살렘을 만들겠다고 계획했단다. 어느 날 칼과 창을 준비해 사람들을 죽이고 시청을 빼앗았단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시 정부군은 다시 전력을 가다듬어 시를 탈환하고 주동자들을 사로잡아 처형했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533년 또 다른 환상(계시)을 봤다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생겨났단다. 예언의 공통점은 독일 뮌스터(Münster)에 천년왕국이 시작된다는 거였어.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든 재산을 팔고 고향을 떠나 뮌스터로 가자고 선동했단다. 예수님이 오시면 이 고생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어. 뮌스터는 네덜란드에서 멀지 않았지. 수많은 사람들이 뮌스터로 몰려들었단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였지. 1534년 부활절이었단다. 전직 제빵사였다가 지도자가 된 얀 마테이스(Jan Matthys)는 일명 특공대 30명과 함께 뮌스터를 점령하다가 죽고 말았어. 그의 후계자는 얀 판 레이든(Jan van Leiden)은 마침내 성을 점령하고 시민들을 쫓아냈어. 얀은 스스로 자신을 다윗이라며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고 불렀지. 나중에는 ‘시온의 왕’이라고 했단다.


얀은 모든 물건을 함께 공유하는 초대교회를 흉내 냈지. 공산주의와 비슷했단다. 저녁이 되어도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지. 자기재산이 없으니 도둑이 들 염려도 없었어. 마치 천국이 이 땅에 임한 것 같았지. 결혼은 의무였단다. 전쟁으로 남자의 숫자가 여자보다 적었지. 결혼하지 못한 여자들이 많았단다. 결국 한 남자가 여러 여자와 결혼해야 했지. 스스로 왕으로 등극한 얀은 16명의 여자와 결혼했단다. 그들은 그것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어. 예수님이 곧 오실 거라고 믿었으니까! 뮌스터 함락 소식과 천년왕국 예언을 믿는 사람들은 점점 뮌스터로 몰려들었단다. 할머니, 손자,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아이들도 손을 잡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들었어.


다음 해 1535년 6월 뮌스터 주교는 군사를 이끌고 뮌스터 성을 포위했어. 양식이 다 떨어진 뮌스터의 급진 개혁가들은 먹을 것이 없었지. 성에 남아 있던 개와 고양이까지도 먹어야 했단다. 그것도 모자라자 풀을 뽑아 끓여먹고 신발 가죽을 삶아 먹기도 했지. 6월 24일 밤 한 사람의 배신으로 성문이 열리고 말았어. 주교의 군사들은 폭도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단다. 1536년 1월 지도자들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해 높은 교회 첨탑 위에 쇠로 만든 새장 같은 곳에 두었지. 그들의 시체는 새들의 먹이가 되었단다. 그 새장이 뮌스터 성 람베르트(St. Lambert) 교회에 매달려 있어. 지금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


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역사가 보여준단다. 중세 말 정치, 사회 그리고 종교적 혼란기에 급진적 종교개혁이 있었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했을 때 독일에서도 농민 반란과 폭동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이들은 환상과 꿈을 믿었지만, 종교개혁은 성경만이 삶의 유일한 기준이었어.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개혁이 아니란다. 이들 대부분은 재세례파였단다. 그들은 루터와 칼빈, 그리고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을 미완성이라고 여겼지. 기성교회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재’(再 ana)세례파(Baptist)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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