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뿌리를 내렸단다. 로마교회로부터 완전히 결별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정치적 목적 때문에 위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계도 있었단다. 제대로 된 종교개혁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어. 유럽의 종교개혁, 특히 칼빈과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경험한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단다. 그들은 엘리자베스의 종교개혁에 만족할 수 없었지. 엘리자베스는 1559년 ‘통일령’(Act of Uniformity)을 시행했단다. 모든 잉글랜드 국교회 신자는 그 예배 의식만을 따라야 했지. 로마교회 예전을 버렸다는 점에서 만족했지만, 충분한 종교개혁에 이른 것은 아니었어. 엘리자베스는 이것으로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이 완성되었다고 믿었지만, 대륙의 영향을 받은 신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여전히 사제가 사제복을 입고 예배를 인도했고, 세례 때 십자가 표지를 사용했어. 성찬 때 여전히 무릎을 꿇는 습관을 유지했단다. 잉글랜드 교회가 다시 로마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지. 그들은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을 개혁하기 원했어.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청교도’(Puritans)라고 불렀지. 그들은 캠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복음을 제대로 설교할 수 있는 설교자를 양성하기 시작했어.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임(Prophesyings)은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개혁신앙에 기초한 장로교 정치 체계를 지지했지. 엘리자베스는 이런 움직임을 좋아하지 않았단다. 여왕은 이런 세력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무정부 상태와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 보았지. 결국 그녀는 청교도들을 핍박했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정착된 종교개혁은 그 성격이 중도(via media)적이란다. 엘리자베스는 크랜머가 시작한 종교개혁의 정신을 열정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어.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에 설교자 두 세 명만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했지. 그녀는 에드워드처럼 지나친 개신교회를 거부하고 메리의 치우친 로마교회를 거절했어. 그야말로 엘리자베스는 중간 길(via media)을 택했단다. 이런 엘리자베스의 중도적 종교개혁은 45년의 통치 기간 동안 굳어져 그 후 잉글랜드 개신교회의 형태로 굳어졌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꼭 같은 예식과 같은 설교와 같은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잉글랜드의 개신교인은 동의하지 않고 반발했단다. 공동 기도문을 강제하는 것은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어. 엘리자베스는 메리 시대에 만들어진 법을 폐지했지만, 다른 한편 청교도들을 박해했어. 통일된 예식과 통일된 설교를 사용하지 않는 모든 교회 예배를 금지했단다. 이 법을 어기면 잡아들였어. 나중에는(1593년) 반 청교도령(Act Against the Puritans)이라는 법을 만들었단다.


‘공동 기도서’에는 종교 개혁자들이 믿고 있는 내용이 고스란히 잘 정리되어 있었어. 기도서에는 삶에 필요한 유용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단다. 예를 들면 ‘항해를 위한 기도’는 당시 적실한 것이었어. ‘전쟁에 나갈 때의 기도’,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동이 틀 때와 해가 질 때의 기도도 있어. 당시 청교도와 미국의 복음주의자는 이 기도문을 터부시하며 좋아하지 않지만, 신앙적으로 아주 좋은 내용이 담겨 있기에 잘 사용하면 유익하단다. ‘설교집’도 마찬가지였지. 당시 목사들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좋은 설교집은 성도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단다. 크랜머가 제안해 만든 것이야. 사실 로마교회에서는 예배에 미사가 핵심이고 설교는 거의 없었어. 그러니 좋은 설교를 들을 수가 없었지! 1547년 크랜머는 12개의 설교를 만들어 출판했는데, 5개의 설교는 교리에 대한 것이고, 7개는 삶에 관한 것이었지.


이 시대는 잉글랜드에 황금기였단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강대국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어. 해상을 지배하며 식민 지배를 넓혔고 동인도 회사를 경영하며 경제적 부를 축척하며 막강한 군사력으로 힘을 가진 국가로 발돋움했단다. 이 때 세익스피어(W. Shakespeare, 1564-1616) 같은 위대한 극작가가 나왔으며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 1561-1626) 같은 철학자가 배출되기도 하지. 하지만 종교개혁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단다. 반쪽짜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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