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메리

▲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1553년 에드워드가 죽고 캐서린에게서 난 메리(Mary of England, 1516-1558), 곧 에드워드의 배다른 여동생이 왕이 된단다. 메리는 어머니의 신앙을 따라 철저한 로마 천주교회 교인이었지. 메리는 교황청과의 관계를 회복시켰고 종교개혁법을 다 폐지했어. 교황의 권위가 다시 회복되었으니, 이단에 대한 박해도 다시 시작되었단다. 개신교 신학자와 성직자들은 교회에서 쫓겨났어. 개신교 공무원도 해고되었지. 핍박으로 인해 많은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망명길에 올랐단다. 스위스의 취리히, 제네바, 바젤, 그리고 스트라스부르로 떠났지.


메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의 아들 필립 2세와 결혼했어. 그 정략적 결혼은 성공적이지 못했지. 결혼 후 2년이 지나 필립 2세는 스페인의 왕이며 신성로마제국의 왕이 되기 위해 자기 나라로 돌아갔단다. 메리는 수백 명의 죄 없는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여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의 메리’(Bloody Mary)라고 불려. 1555년부터 1558년 사이에 276명의 개신교인들이 화형을 당했단다. 수많은 개신교인들을 죽인 피의 메리도 5년 통치 후 1558년에 죽고 말았지. 메리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잉글랜드에는 다시 개신교인들이 돌아와 로마 천주교 신앙의 잔재들을 없애버렸단다.


존 폭스(John Foxe, 1516-1587)는 지금까지 교회 역사에서 순교당한 사람들의 역사를 연구해 책으로 냈는데 ‘순교 사화’(Acts and monuments)란다. 폭스는 피의 메리 박해를 피해 대륙으로 망명길에 올랐단다. 독일로 갔다가 스위스 바젤에서 잉글랜드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모아 정리했어. 그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학자였지. 1559년 잉글랜드로 돌아와 피의 메리 여왕 시절에 순교한 사람들의 많은 자료를 모아 책으로 출판했단다. 1553-1558년 사이에 개신교 신앙 때문에 순교한 잉글랜드의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야. 폭스는 로체스터 주교인 휴 라티머(Hugh Latimer, 1487-1555)와 우스터의 주교 니컬러스 리들리(Nicholas Ridley)의 순교에 대해 적어 우리에게 전해준단다. 메리가 왕이 된 직후 라티머와 리들리는 체포되지. 그들은 로마 천주교회로 돌아올 것을 강요받았어. 하지만 그들은 교황의 권위와 미사를 거부했단다. 그 결과는 끔찍했지. 화형이 선고되고 집행되었어. 불길이 타오를 때 라티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 “리들리, 마음 평안히 먹고 담대하게 행동합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잉글랜드에 결코 꺼지지 않을 촛불을 밝히게 될 것입니다.” 폭스는 라티머와 리들리, 크랜머의 순교에 대해 자세히 쓰고 이런 기도문을 남겼어. “오! 주여, 당신의 종인 휴 라티머, 니컬러스 리들리, 토머스 크랜머의 본을 따라 당신을 경외하며 살고 당신의 은혜 가운데 죽어, 당신의 평안 속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도 67살의 고령에 붙잡혀 옥에 갇혀 고통을 당했단다. 무엇보다 크랜머는 동료 리들리와 라티머가 화형당하는 것을 지켜봐야했단다. 나이가 들어 육체도 약해진 크랜머는 처참한 고문과 화형을 보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어. 그는 자신의 개신교 신앙을 포기하고 로마 천주교회 신앙으로 돌아가겠다고 항복하고 말았단다. 메리 여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어. 하지만 옥에서 당장 꺼내주지는 않았단다. 메리는 크랜머를 개신교인들을 향한 본보기로 만들려고 단단히 결심했지.


여왕은 크랜머가 옥스퍼드 대학의 마리아 예배당에서 공개적으로 로마 천주교회에 대한 복종을 고백하도록 했어. 어떻게 됐을까? 크랜머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단다. 하지만 자신이 로마 천주교회를 떠난 것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어. 오히려 자신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로마 천주교회로 다시 돌아가려했던 잘못을 고백했지. 화가 난 메리 여왕은 며칠 후 그를 화형에 처했단다.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오른 손을 먼저 불길 속에 집어넣어 태웠다고 해. 그 오른손으로 로마 천주교회에 순종하는 아들이 되겠다고 서명해 죄를 지었기 때문이야. 그의 마지막 기도는 “주여! 나의 영혼을 받으소서!”였단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지도자 왕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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