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제네바 시는 칼빈을 위해 교회 가까이 집 한 채를 마련했단다. 푸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정원도 있어. 검정 우단 외투 한 벌도 선물한단다. 성 베드로 교회의 설교단이 새로 만들어졌어. 칼빈의 아내와 딸 주디스를 데려오도록 말 두 필이 끄는 마차와 전령을 스트라스부르로 보낸단다. 칼빈을 초빙하기 위해 극진히 대우했어. 칼빈은 시로부터 매달 500플로린의 월급을 받고, 12부대의 밀과 포도주 2통을 받아. 이 분량의 밀로는 일주일에 20번 이상 빵 1,200개를 만들 수 있고 포도주는 하루에 2병을 마실 수 있는 양이지. 보통 목사보다 좋은 대우란다. 제네바 시의회는 수많은 나그네를 대접해야 하는 칼빈의 상황을 고려해 생활비를 정했단다.


칼빈은 3년 전 실패했던 교회개혁을 다시 시작해. 칼빈은 스트라스부르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 특별히 아버지 같은 부써 목사로부터 배운 것이 많았지. 칼빈은 이제 본질에 있어서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지만, 비 본질에서는 유연하게 일했어. 큰일에 집중하고 사소한 일에는 넘어가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피하고, 과거의 일은 용서하며,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 제네바로 돌아온 후 첫 번째 교회 집회에서 칼빈은 터키족이 헝가리를 위협하고 있고, 페스트가 사람들을 괴롭히며, 프랑스에는 혹독한 핍박이 있으니,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할 것을 설교했단다. 3년 전 자신을 추방했던 제네바 시에 대한 서운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어.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 온지 2주가 된 때 교회개혁을 시작해. ‘제네바 교회법’(Les Ordonnances eccl?siastiques)을 만들어 소의회에 제출하지. 1541년 11월 20일 의회의 손을 거쳐 ‘제네바 교회법’이 통과된단다. 이 교회법은 전 세계 개신교회가 따르는 교회 질서야. 칼빈은 우선 네 가지 직분을 제시하지. 목사, 교사(신학교 교수), 장로, 집사야. 로마교회에는 평신도 직분자인 장로나 집사가 없어. 칼빈의 큰 기여는 일반 성도를 교회의 권위 있는 직분자의 위치로 회복시킨 것이야. 칼빈이 자기 마음대로 정한 것이 아니라, 읽어버린 성경의 직분을 되찾은 것이란다. 칼빈은 장로를 교회가 선출해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시의회는 반대하지. 시의회는 장로를 교회가 아니라 시가 임명하는 것으로 바꾼단다. 칼빈은 비본질적인 것은 양보하지. 당시 교회와 시 정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특수한 상황도 고려했단다. 교인의 최종 출교 권한은 교회가 아니라 시의회가 가졌어. 그러나 발전도 있었지. 성도가 죄를 계속 범할 경우 세 번 교회가 경고한 후 교회는 생활의 변화가 보일 때까지 성찬에서 제외시킬 수 있었단다. 매 주일 새벽과 오전 아홉(9) 시에 예배가 있고, 정오에는 어린이를 위한 요리문답반이 있고, 오후 세(3) 시에는 두 번째 예배가 있어. 주중에도 월요일, 수요일과 금요일에 성경강해가 있었지. 세례는 로마교회가 교회 출입문 근처에서 했지만 제네바 교회는 강단 옆에서 했어. 성찬은 교인들이 몇 사람씩 앞으로 나와 성만찬 테이블(상) 앞에서 받았단다. 제네바 교회는 이제 개신교회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 그렇지만 교회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시행된 것은 아니란다. 제네바 교회와 시의회가 이 법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는 데는 14년의 세월(1555년)이 더 필요했단다.


제네바는 점차 안정을 되찾고 종교개혁 신앙으로 체질이 변하기 시작했어. 신앙이 바르게 서니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가정과 사회가 힘을 얻게 되었단다. 법과 질서도 성경의 토대위에 결정되고 집행되었어. 칼빈의 가르침을 받은 시의회는 시민들의 삶을 평화롭고 경건하게 유지하기 위해 법규를 잘 만들어 시행했단다.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처벌하기도 하지만 지키는 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잘 했지. 법은 구체적이었어. 예를 들면 거리에 음식 찌꺼기나 오물을 버리면 안 돼. 발코니에는 반드시 난간을 만들어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해. 유모는 아기와 함께 침대에 잘 수 없고 집주인은 경찰의 허가 없이 방을 임대할 수 없고, 상인들은 정직하게 거래하고 상품을 너무 비싸게 팔아서도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 시행했지. 선거 때가 다가오면 목사는 경건한 사람을 선출해야 할 시민의 의무를 가르쳤고 성도들은 기꺼이 순종했어. 제네바는 이렇게 유럽에서 점점 경건한 종교개혁 도시로 우뚝 서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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