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마음 들여다보기(69) - 신수정 박사/청소년전문상담가, 울림심리상담센터장

“엄마는 흥분해서 막 다그치니까 저는 그냥 따라주는 거예요. 엄마 말에 아무리 반대해도 결국은 모든 게 엄마 뜻대로 되어버리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선생님, 우리 애는 너무 소극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이질 못해요. 요즘엔 침대에 누워만 있고, 아예 아무것도 안하려 해요.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요. 힘없이 누워있는 아들을 보면 오히려 제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에요.”


고등학생인 영준(가명)이는 요즘들어 부쩍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아들의 행동이 답답한 어머니는 아들이 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영준이를 볼 때마다 다그치게 됩니다. “뭐하니 공부해라! 운동이라도 좀 하든지! 밥 먹어라! 산책이라도 가라! 매사에 무얼 하더라도 열심히 좀 해야지!” 이처럼 하기 싫은 것을 연속적으로 시키는 엄마에게 영준이는 자기 진심을 표현해보고 싶지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작은 목소리로 대답만 할 뿐입니다.


영준이는 어릴 적부터 규칙이 강한 엄마의 양육태도를 경험해왔기에 결국은 모든 게 엄마 뜻대로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았습니다. 중3인 시현(가명)이는 엄마에 의해 억지로 상담센터에 끌려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얘가 문제가 정말 많아요!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누워만 있는 거예요. 사람이 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래야 되는데.. 얘는 무기력하게만 있으니 아무래도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시현이는 엄마의 등살에 못이겨 정신과 병원을 방문했는데, 그럼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이번엔 자신을 상담실에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현이는 자신이 왜 상담을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고, 특별히 스트레스가 많거나 괴로운 사건도 없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에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리 자기 의견을 말하더라도 결국 엄마가 원하는 대로 진행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현이도 영준이처럼 엄마의 지나친 통제를 이겨내지 못해 그저 수동적으로 따르는 모습이 엿보였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했기에 매사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그러므로 무엇을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대부분의 행동은 무기력한 반응뿐이었습니다.


영준이와 시현이에게서 보이는 공통적 특징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강력한 통제를 반복적으로 경험해왔다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엄마의 통제를 이겨낼 수 없고, 엄마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조차 어려웠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을 자기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자포자기해버리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일상적 무기력으로 연결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 될 때, 즉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태도로 반응하는 양상이 나타납니다. 이들처럼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겨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포기해버리는 무기력한 증상을 ‘학습된 무기력’이라 합니다.


즉, 학습된 무기력이란, 실제로는 자기 능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무기력으로 대응해버리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보이는 학습된 무기력은 생활 속에서의 우울과 불안을 더욱 고조시켜 시간이 갈수록 심한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기에 위험한 행동적 신호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작권자 © 고신뉴스 KN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