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식민지 확장이 줄어들 것처럼 보였어. 영국,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은 소유했던 식민지를 많이 잃었단다. 하지만 영국이 나폴레옹과 전쟁 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빼앗으면서 점점 식민지 영토를 넓혔지.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피식민 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했어.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두드러졌단다. 하지만, 서구 열강들은 영토적 식민 정책 이외에도 경제적 식민지화를 꽤했어. 그들은 철도, 항만 그리고 공장을 지으면서 경제적으로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식민화했단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영토를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으로 식민 영토를 팽창해나갔어.


교회는 이런 식민지 정책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 식민지 정책에 대해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반대했지. 물론 일부 기독교인도 백인 우월주의적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어. 하나님이 백인에게 서구 문명과 기독교 신앙을 맡기고 미개한 식민 지역에 공업, 자본, 민주주의,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을 전해야하는 사명을 맡겼다고 합리화했단다. 식민지의 현지 기독교인들도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식민 정부를 돕고 협력해야 한다고 믿기도 했지. 하지만, 대부분의 피식민 백성은 서구 식민 국가를 증오하고 싫어했단다.


종종 사람들은 선교사들을 식민(植民) 국가의 앞잡이라고 매도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아. 선교사들은 오히려 식민주의와 착취를 비판하고 반대했단다. 선교사들은 백인 상인들이나 정복자들보다 먼저 오지 원주민에게 들어갔어. 대부분의 식민 국가 관리들이나 상인들은 선교 사역을 반대하고 훼방하곤 했지. 대체로 식민정부는 선교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려했다고 보아야해.


16세기 이후 세계선교는 로마 천주교회가 주도했다면 19세기 세계선교는 개신교회가 주도했어. 하지만 개신교 선교는 정부나 교회가 주도하지 않고 성도들 스스로 감당했단다. 각종 선교협회(Missionary Societies)가 설립되었지. 선교협회는 교파 소속도 있었지만, 교파를 초월한 것이 특징이었어. 이 개신교 선교의 또 다른 특징은 성도 개인의 자발성이란다. 최초의 자발적 선교 협회는 1698년에 세워진 ‘기독교 지식 전파 협회’(The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SPCK)야. 1701년에는 ‘해외 복음 선포 협회’(The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Gospel in Foreign Parts: SPG)가 세워졌어. 모두 잉글랜드 선교단체였지. 그 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모라비아 형제단과 감리교 선교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선교회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단다.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독일, 그리고 미국의 개신교 선교협회들이 만들어졌어.


이 선교협회들은 정부나 교회의 지원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 의한 폭넓은 경제적 지원과 헌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특징이지. 선교협회들은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고국에 생생하게 전해주어 외국문화에 대한 정보와 교육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어. 또 한 가지는 선교사역을 통해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단다. 처음에 여성 선교사들은 교육, 간호, 노약자 간호 영역에 활동했어. 나중에 선교지에서 여성 선교사들이 남성 선교사들의 일까지 요구하면서 교회 안에서 여성 사역자가 등장하는 단초가 되기도 하지. 마지막으로 선교협회의 등장으로 나타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복음으로 교단 사이의 협력이 활성화된 것이란다. 선교지에서는 교파간의 차이보다는 복음 전파라는 동질 사역이 더 컸어. 선교사들은 경쟁을 피하고 협력하기 위해 노력했단다.


이런 필요로부터 19~20세기에 교회연합 운동(Ecumenical Movement)이 생겨나지. 윌리엄 캐리가 1810년 남아프리카 게이프 타운(Cape Town)에서 국제 선교사 총회 개최를 제안했지만, 그 열매는 정확히 100년 후 1910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제1차 선교사 총회(Missionary Conference)가 개최되면서 이루어졌어. 교회연합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이지. 수 백 명의 선교사가 예비연구에 참여했다고 해. 주로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참여했는데 정보와 계획을 교환함으로 선교연합을 가능케 했지. 총회는 상임위원(Continuation Committee)을 구성해 많은 연구를 가능케 했고 다음 모임을 준비하도록 했단다. 이렇게 19세기 개신교 선교는 새로운 기독교 시대를 열었어.


저작권자 © 고신뉴스 KN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