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미국이 독립전쟁을 통해 얻은 것은 무한한 자신감이었어. 서부 개척과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경험하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게 했단다.


미국 기독교인들은 정통 기독교 신앙으로부터의 점점 이탈해갔지. 미국의 초기 대통령(1대와 2대, 그리고 5대)들은 모두 유니테리언주의자들(Unitarianists)이었어. 유니테리언주의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의 전적 타락을 부정했지. 기적을 믿지 않았단다. 그들은 근대 인문주의자들이었고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자들이었어. 하버드 대학은 대부분 유니테리언주의 교수들로 채워졌단다.


물론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와 문화는 기독교적이었어. 1830년 총인구가 1280만 명이었는데, 그 중에 기독교인이 1210만 명이었다고 하니 대단했지. 하지만 이 통계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뿐이었단다. 이 숫자 가운데 상당부분은 아예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교회에 출석하더라도 연약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어. 현대문명이 주는 위대함과 편안함에 빠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었지. 미국 초기에 강성했던 청교도적인 개혁신앙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어.


바로 이 시기에 놀라운 제2차 대각성이 일어난 거야! 대각성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인정해야하겠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가능하다고 본 것은 부흥운동이 낳은 부정적인 열매라는 점도 지적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란다.


제2차 대각성은 미국 교회를 부흥시켰어. 특히 감리교회와 침례교회의 숫자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지. 장로교회도 성장했지만, 교회가 분열되는 아픔도 겪어야했어.


장로교회는 크게 두 파로 나눠지게 되었는데, ‘뉴 스쿨’(New School)과 ‘올드 스쿨’(Old School)이라고 부른단다. ‘뉴 스쿨’은 부흥과 그와 관련된 입장을 지지하는 데 비해 ‘올드 스쿨’은 그런 변화를 거부했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기에 교회가 분리될 정도였을까? 요한복음 6장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나니”라는 말씀을 각각 달리 해석했단다.


‘뉴 스쿨’ 장로교인은 성부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일하시지만 사람의 영혼에 들어와 사람의 의지를 바꾸지는 않으신다고 생각했어. 인간은 스스로 그런 의지의 결단을 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믿었지. 그러니 인간이 의지적 방법을 잘 사용하면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거야. 바로 그 생각이 17세기 네덜란드의 아르미니우스의 교리였지. 그에 비해 ‘올드 스쿨’ 장로교인은 정통적 개혁신앙대로 성령님이 죄인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고(중생) 의지까지도 변화시키셔서 믿도록 해 구원하신다고 주장했단다. 이렇게 ‘올드 스쿨’ 교회는 ‘뉴 스쿨’ 교회가 주장하는 은혜를 받는 여러 가지 방법론에 대해 반대했지. ‘인간의 전적 타락’과 ‘무조건적 선택’과 ‘제한된 구속’,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 교리(TULIP)를 굳건하게 믿고 실천했단다.


1837년 장로교회는 두 개로 갈라졌지. 필라델피아 제일장로교회 앨버트 반즈(Albert Barnes, 1798~1870) 목사의 ‘로마서 주석’(1834) 때문이었어. 그가 쓴 반즈 주석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단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원죄를 부정했지. 인간은 중생하지 않고도 계명을 지킬 수 있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개종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가르쳤어. 이런 가르침은 정통 장로교 교리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란다. 장로교회 총회는 이 문제를 의논했어. 장로교회 총회 총대의 다수가 ‘뉴 스쿨’이었지. 반즈의 교리는 문제가 없다고 판결이 났고 무죄로 풀려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나중에 ‘올드 스쿨’ 장로교회는 ‘뉴 스쿨’ 장로교회와 결별했어. 진리를 위해 교회의 분리를 감수한 것이지.


제2차 대각성 기간 동안 감리교회와 침례교회는 부흥하는 교회를 섬길 일꾼을 찾기가 어려웠어. 두 교회는 목회자와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데 비교적 유연했단다. 그들은 짧은 기간 교회를 섬길 일꾼들을 많이 양성해 교회 개척지로 보냈어. 그에 비해 장로교회는 이 부분에서 신중했단다.


목회자 양성기관인 뉴저지(New Jersey) 대학이 신학교 교육에 관심이 줄어들자, 미국 장로교

회는 1812년 목회자 양성만을 하는 신학교(Seminary)를 따로 만들기로 결정했단다. 뉴저지 대학은 지금의 프린스턴 대학이 되는 데 그것과 구별되는 프린스턴 신학교(The Theological Seminary of the PCUSA at Princeton)이지. 안타깝게도 지금 프린스턴 신학교는 당시의 신학과 신앙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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