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합당한 예배(7) -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교회가 예배문제로 왜 방역당국을 향해 거칠게 항의했나요? 예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심해 달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었나요? 교회가 정부와 다투는 모습이 볼썽 사나웠습니다’라고 했죠? 그렇게 보일 수 있겠네요. 교회가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도 기득권이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제1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현 정부가 진보정권이기 때문에 반성경적인 정책을 세울 뿐만 아니라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퍼져가고 있기에 더더욱 예민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기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상관없이 교회와 정부, 신앙과 정치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정부는 교회와 예배를 보호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교회와 정부가 정면충돌한 경우가 많습니다. 각국 정부가 교회의 예배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정부를 세우시고 칼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구원의 기관으로 세우고 말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정부는 교회 문제, 특히 예배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교회는 정치문제, 특히 법적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정교분리라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분리하기가 힘듭니다. 정치와 종교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둘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정부는 “믿음의 사안에 조금이라도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3항). 정부는 비상시국에서 교회와 예배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이제는 세속화된 국가, 다원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기독교회의 예배만 보호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이비종교들은 예외로 해야겠지만 모든 종교들의 예배를 잘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가 개신교회의 예배를 보호해주기를 바라는 것만큼 타종교의 예배를 보호해줄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사태로 인해 개신교회의 예배가 더 엄격하게 제한 당했다고 느낍니다. 개신교회가 최대의 종교이기 때문에 더 강력하게 행정제재를 한 것 같습니다. 방역당국의 절박함이라고 하더라도 형평성 있게 행정제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코로나사태에서 방역당국이 예배에 대해 일관성 있는 지침을 내려 주지 않아서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이 있었기 때문에 지역별로 교회연합회에서 잘 협의해 가면서 예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상남도가 대표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계가 하나의 창구를 통해 방역당국과 잘 협의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기총이 기독교의 대표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한교총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미흡했던 감이 없지 않습니다. 차제에 교회에 정부와의 관계를 전담하는 부서가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개신교회들이 교단마다 정부와의 관계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그 부서가 이번 코로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교단마다 있는 전담부서, 그리고 기독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부서가 있어서 정부와 효율적으로 대화하고 예배 문제를 풀어갔습니다. 교회가 방역당국과 협의했기 때문에 예배시 찬송을 아예 하지 않기로 하기도 하고, 예배인원에 대한 것도 잘 조정했습니다. 예배는 교회만의 문제이지만 함께 모이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으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코로나가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잘 정립할 수 있는 계기였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평상시에는 교회가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할 일이 없겠지만 앞으로 코로나사태와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합니다. 예배의 문제는 기독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겸허하게 청원해야 한다

교회는 방역당국이 예배를 금지하라는 행정명령이 떨어졌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를 향해 유독 과도하게 예배를 금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 따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감염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발적으로 예배하는 방식을 바꾸어서 하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한 주일이라도 예배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비상시국에서는 예배장소와 방식도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거의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방역당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예배 외에 소모임과 식사 등을 금지하라는 행정명령이 내렸을 때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따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직자나 불신자이거나 타종교인이라도 우리가 그 합법적인 권위를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4장4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역당국의 무조건적인 예배금지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고 헌법소원을 내자고 했는데 이 경우에 우리는 겸허하게 청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1장4항). 정부와 대립하고 투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세를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청원하듯이 청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한 신학자가 문제를 제기했듯이 이번 코로나 사태가 좀 안정되고 나면 과연 교회가 방역당국의 행정명령을 무조건 따른 것이 합당한 것이었는지, 어떤 경우에 불가피한 저항을 할 수 있는지를 토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함을 시위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어떻게 예배해 왔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정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의 예배를 흔드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누가 나서서 성전문을 닫아 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말 1:10). 하나님께서 오죽 했으면 너희가 바치는 제물에 질려 버렸다고 하셨을까요? 신약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코로나사태에서 예배를 막은 것이 정부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면 우리 스스로 예배에 대한 새로운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핍박받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행 14:22). 우리가 핍박과 고난을 받기 위해 부름 받았다면 예배가 위협받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와 달리 신약시대는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예배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은 우리가 예배하는 것을 엿보는 것이 아니라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감염의 위험에 대해서만 신경 쓸 따름입니다. 교회가 더불어 살아갈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의 예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교회의 예배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니 우리가 제대로 예배해야 하겠습니다.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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