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합당한 예배(2) -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교인이 성숙하면 목사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나요? 종교개혁은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했는데, 우리 개신교회가 다시 로마가톨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가요?’라고 물으셨죠? 경건회는 혼자서 해도 됩니다. 몇몇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공예배는 회중이 모인다고 해서 진행될 수 없습니다. 목사가 없으면 예배를 할 수 없습니다. 성직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지적인 특수한 형편에서 직분자없이 예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분자를 세웠고, 그 직분자들이 교회를 섬기고 있는 한 회중은 직분자들을 통해 공예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섬기라고 직분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요, 자기 백성과 교제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직분자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한다


회중은 직분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도 직분자를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있어야 합니다. 구약시대 모세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강림하시고 음성을 발하시기 시작하자 백성들이 너무 두려워서 모세에게 찾아가서 말합니다. 당신이 하나님 음성을 듣고 우리에게 전해 달라고 말입니다(신 5:22-27).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라고 해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드님을 직분자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 신비주의입니다. 신비주의는 태양을 직접 보려고 하는 것처럼 눈 멀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도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중보자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직분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수행하신 직분의 성취를 인간직분자들에게 맡기십니다.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직분입니다.



목사는 예배 전체를 인도한다


목사는 예배 전체를 인도합니다. 목사는 ‘기도인도자’입니다(빌 1:9-11; 엡 1:16-19). 예배에서 목사가 설교 전에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설교 후에도 설교를 요약하는 기도를 합니다. 목사가 하는 대표적인 기도는 ‘목회기도’입니다. 유럽의 개혁교회에서는 이 기도를 ‘기독교의 모든 필요를 구하는 기도’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목사는 온 회중, 온 교회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회중은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어떻게,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목사는 ‘찬송인도자’입니다(엡 5:19; 골 3:16). 교회마다 찬송인도자가 있고 찬양대가 있기도 한데 예배찬송의 인도자는 다름 아닌 목사입니다. 찬송을 얼마나 잘 부르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찬송은 영으로 마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4:15). 고대로부터 예배에서 시편찬송을 했다는 것도 알면 좋겠습니다. 목사는 회중의 찬양을 앞서 인도해야 합니다.


목사는 또한 ‘설교자’입니다(딤후 4:2). 목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입이 됩니다. 신자라면 누구든지 성경을 묵상합니다. 큐티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예배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공적인 선포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목사의 설교가 지금도 계속되는 예언의 말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성경만이 아니라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는 ‘성례집례자’입니다(행 2:38, 42, 46). 예배에는 은혜의 방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말씀만이 아니라 성례도 있어야 합니다. 세례는 매 주일마다 할 수 없지만 성찬은 매 주일 해도 됩니다. 우리는 로마가톨릭에 대한 반동 때문에 성찬식을 자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는 자신이 성례집례자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목사는 말씀을 들려줄 뿐만 아니라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장로는 예배를 보호한다


장로는 다스리는 사역자입니다(딤전 5:17). 장로는 목사와 함께 당회를 이루고 당회가 예배를 책임집니다. 장로는 울타리를 치는 역할을 합니다. 예배에서 장로는 하나님의 손이 됩니다. 그 손으로 막아서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잘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선, 장로는 ‘설교단’을 보호합니다(행 20:28-30). 설교단에서 이단사설이 전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장로는 성례를 보호해야 합니다. 장로는 목사와 함께 세례 받을 사람을 교육하고 문답합니다. 즉, 장로는 ‘세례기’를 보호합니다(롬 6:3-4; 갈 3:27; 엡 4:5; 히 6:2; 벧전 3:21). 함부로 세례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나기 때문에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로는 ‘성찬상’을 보호해야 합니다(고전 10:21; 11:28-29). 성찬상을 더럽히는 이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심방을 하여 교인들의 삶을 살핍니다. 그들이 성찬상에 나아오지 못하게 하는 모든 죄들을 제거하도록 권면하고 책망합니다.



집사(권사)는 예배의 분위기를 만든다


집사(권사)도 예배를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고대로부터 집사는 예배가 잘 드려질 수 있도록 예배 전체의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예배에서 집사는 하나님의 눈과 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모든 세대가 다 함께 예배했기 때문에 집사들이 돌아다니면서 조는 아이들과 교인들을 깨워서 예배를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집사가 맡고 있는 성구가 ‘연보함’입니다(행 6:1-3). 집사는 긍휼의 사역자이기에 연보함을 맡고 있습니다. 집사는 연보위원인 것 정도가 아니라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사람입니다. 연약한 이들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긍휼을 베풉니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집사(권사)가 없이는 예배가 제대로 드려질 수 없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직분자의 존재감이 미미해졌습니까? 현장예배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직분자의 역할이 축소되고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예배 안에서 섬긴 직분자들은 예배 밖에서도 회중을 섬깁니다. 목사는 집에서도 성도들을 가르치고(행 20:20), 장로는 심방을 통해 성도들을 다스리고(약 5:14), 집사(권사)는 성도들의 형편을 살펴 긍휼을 베풉니다(행 6:1-3). 직분자들의 돌봄을 잘 받은 회중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면 아름답고 복된 예배가 됩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는 직분자들을 통해 합당한 예배를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시대에 직분자의 존재감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직분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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