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다운 교회, 칭송받는 교회’ 기획 시리즈를 마치며- 이론과 실천·현장의 조화로 교회의 아름다움 보여줄 과제 남겨


▲ 왼쪽부터 신호섭 박창원 목사, 구본철 편집국장
▲ 왼쪽부터 신호섭 박창원 목사, 구본철 편집국장


일시 2020년 6월 16일(목) 오후 2시
장소 고양시 목향(木香) 안산(雁山)


참석 신호섭 목사(올곧은교회)
박창원 목사(포항장로교회)
사회 구본철 편집국장(고신언론사)



구본철 편집국장: 금년 1월부터 ‘교회다운 교회, 칭송받는 교회’라는 주제로 6개월간 연재를 진행하였습니다. 좋은 연재 글로 독자들에게 유익을 주신 신호섭 박창원 목사님에게 감사드리며, 먼저 연재 후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신호섭 목사 : 매달이 아니라 한 주씩 연재하는 거라 많이 부담됐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겠다고 한 이유는 이 주제가 정말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관심을 가졌던 주제이고, 박사학위 논문도 교회론 쪽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마감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원고는 마감이 쓴다고 마감 시간이 되니까 글이 나옵니다. 24회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기회가 됐고, 기독교보 독자들에게도 총회의 표제를 좀 더 교리적인 면에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박창원 목사: ‘이제 다 끝났다. 후련하다. 한숨 돌리겠다’ 싶었습니다. 처음에 이 일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작가도 가르치는 교수도 아닌 목회현장에서 한 주, 한 주 매일 씨름하면서 목양하는 걸 소임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목사였기에 글을 쓰기보다는 독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고사했습니다. 그런데 총회 주제인 ‘교회다운 교회, 칭송받는 교회’에 대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며, 청년 사역을 했던 제가 이 글을 쓰는 데 적임자라고 부탁을 하셔서 결국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부족하지만 청년 사역을 한 사람으로서 책임과 청년을 사랑하는 마음이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또 교회가 지금껏 저를 길러주었기 때문에 그 빚을 갚는 마음으로 글을 썼지요. 무엇을 쓸지 미리 내용을 계획해 두었던 건 아니고 매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따라 성경과 신앙고백이 보여 주는 교회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재를 마치는 지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 왼쪽부터 신호섭 박창원 목사, 구본철 편집국장
▲ 왼쪽부터 신호섭 박창원 목사, 구본철 편집국장


구 국장: 신 목사님은 성경적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총회의 표제로 삼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단 하나의 교회, 참된 교회와 거짓교회, 참된 교회의 3대 표지, 참된 교회에 가입할 의무, 교회 정치와 질서, 직무와 직분자들 등의 주제로 접근해 글을 쓰시면서 6개월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연재하시는 동안 필자가 느끼는 새로움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신 목사 :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목회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신학계에서 유행하는 칭의 교리, 칭의론 문제가 아니라 교회론입니다. 교회가 뭐냐입니다. 지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COVID-19, 우한 폐렴)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비난을 당하는 게 교회가 뭔지 정확하게 정의가 안 내려져 있기에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24가지 주제와 제목을 미리 잡아놓고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많이, 오래 들어서 익숙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 교회 직원과 직원 선출, 교회 존재 목적과 사명 등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막연합니다. 저도 한 번 더 공부하면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목회현장에 적용되지 않은 부분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쓴 글이 현실에서 거리가 너무 멀고 실천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을 때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고신교회 성도들 가운데 좋아하는 분들도 계셨겠지만, 불편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실천하고 적용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구나! 스스로 목회현장을 돌아볼 때도 그런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유익했습니다.


구 국장 : 우리가 다룬 주제가 목회현장에서 현실적인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겠고, 어떤 부분은 한국교회의 요원한 숙제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번 연재가 지속적인 울림으로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신 목사 : 여전히 현재 진행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총회도 그렇다고 봅니다. 제68회 총회에서 출석 장년 성도 500~1000명을 기준으로 단독 또는 2개 교회 이상 교회가 연합해 교회를 개척하는 것으로 결의했습니다. 저는 교회가 숫자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수만 명, 수천 명 모이는 교회가 훨씬 더 문제가 많고, 수백 명, 수십 명 모이는 교회는 성경적이라는 이런 이분법적인 구조는 안 맞는다고 봅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들도 대단히 성경적으로 교회를 잘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토양이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여전히 고신교회도 많이 부족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는 당회원들의 인식 변화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절대 분립이 안 됩니다. 또 하나는 현실적으로 수천 명이 되는 교회들이 분립한 좋은 선례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에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매뉴얼화하면 좋겠습니다.


목사가 자기 양을 다 알고 목회할 수 있는 적정 숫자를 보통 300~500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1000명 이상 넘어가면 교인들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수만, 수천 명이 되는 교회들이 100, 200, 300명씩 과감하게 분립을 시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단의 개혁파 신조에 근거해서 분립하는 선례들이 더 많이 일어나면 후배들도 큰 용기를 얻을 거 같습니다.


구 국장: 박창원 목사님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모두가 교회의 위기라고 말하는 시대지만 떠난 청년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남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이라고 믿는데요. 이번 연재에서 청년들이 교회의 자녀로 자라길 바라며, 교회에 대한 청년들의 고민을 살피고 우리가 고백하는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 그리고 교회 생활의 복과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문답식으로 연재하셨습니다. 필자로서 유익과 새로움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박 목사 : 가장 큰 유익은 제가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가진 것이 가루 한 움큼밖에 없었기에 매주 고민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면서 쓸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그 과정 자체가 제게 훈련이었고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생각할 때 ‘신앙고백적인 교회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지, 또 신앙고백이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적인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유산임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또 글을 쓰면서 제가 소망하는 교회가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개척한 지 3년째가 지나고 있었는데 신앙고백에 기초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소망했던 저의 초심이 떠오르더군요. 목회에 치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첫 마음이 흐려지고, 또 바른 교회에 대한 소망이 식어가고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제 마음과 자세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과도 글을 나누며 교회적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연재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저 자신입니다.


한편 글을 연재하면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인데 청년들이 읽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보는 교회의 어른들, 목사, 장로, 권사, 연세 있는 분들이 읽기에 청년들은 이 글을 읽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 이 글을 읽으신 당회원들이나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이런 교회를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장년들이 청년들에게 우리가 고백하는 교회가 가장 성경적이며 아름다운 교회임을 소개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구 국장 : 교회 장년들이 교회관 정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좋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교회를 가르쳐주지 못하는 한계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박 목사 : 청년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예수를 안 믿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교회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다. 그러나 나는 교회 안 가고 믿는다.’ 가나안 성도가 그런 개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시할 때 그리스도의 구원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구속 사역의 결과로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며, 자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게 복음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니 구원과 함께 교회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인 교회에 대해 가르치면 자녀들은 어머니를 공경하게 될 겁니다.


제가 청년 사역을 할 때, 가장 감격스럽고 감사했던 게 교회를 가르치니 교회를 사랑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교회의 귀함과 영광을 가르치지 않으면 교회를 하찮게 여기며, 쉽게 교회를 떠납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교회를 가르치면 그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또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시작한 교회입니다. 저는 교회를 가르쳤고, 하나님은 그 가르침을 받은 청년들과 함께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지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고신교회를 향한 청년들의 사랑과 헌신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할 때 그들의 현실적 필요를 채워 주려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그게 성경과 신앙고백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을 안 가르치고 또 거기에서 말하는 교회를 설명하지 않으니, 청년들이 교회로부터 받을 것이 없게 됩니다. 또 이렇게 되는 것은 가르치는 이들이 신앙고백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이들이 신앙고백에 대해 확신하고, 이를 통해 청년들을 교회의 자녀로 길러내겠다는 소신과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시류에 흔들리는 교회가 아닌 성경에 붙들린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각 교회의 청년부서 마다 교회를 공부하는 모임과 운동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이는 당회원들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성경과 신앙고백서를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교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정립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게 정립이 되고 나면 어떤 교회를 세우고 어떤 성도를 길러낼지 혼돈이 생기지 않습니다.


구 국장: 연재를 마치고 아직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겠지만, ‘교회다운 교회, 칭송받는 교회’로 가기까지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변화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과제를 몇 가지씩 꼽아 주시고 해결하기 위한 팁도 공유해 주십시오.


신 목사 : 너도나도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수없이 이야기합니다. 대형교회, 물량주의, 성직자의 사제화 등 수많은 문제가 있는데 요즘에 이게 대답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거 이야기하는 게 뭔 의미 있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뭔가 대책을 세우고 개선점을 이야기할 자격이나 역량이 있을까요? 한국교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보다 현재 처해있는 나의 사역과 사명에 집중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제가 신학생들에게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하거나 너희들이 생각하는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준비하지 않고 한국교회와 고신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소리만 내다가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물론 한국교회가 개선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24개 주제가 전부 다 해당할 겁니다. 대표적인 게 설교가 변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설교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 강단이 변화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외형과 조직과 환경적인 변화는 요원합니다. 설교는 분명히 변화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목회자들이 다시 성경과 신학과 교리와 목회와 교회와 사람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원초적인 공부를 회복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하는 세미나를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국교회의 지형이 5~10년 지났을 때 바뀔 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시찰회가 제대로 기능해야 합니다. 시찰회가 우리 교단의 헌법에 있는 교리·관리·표준 문서를 공부하면서 성경적인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시찰회가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개혁주의 목회를 하는 기능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이 일은 계속 반복됩니다. 시찰회가 시찰장을 중심으로 공부한다면 한국교회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봅니다. 한국교회를 논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보다 우리 교단과 노회에 변화가 일어나면 많은 부분이 바뀌지 않을까요?


한국교회는 아직도 성장주의에 몰두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성장과 부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배당에 많이 앉아 있기만 하면 그게 부흥이고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의식 변화가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주일 집합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다가 5, 6월에 집합예배를 다시 시작했는데 장년이 60%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지금까지 목회를 뭘 한 거지? 내가 목회를 어떻게 했길래 40% 교인이 교회에 안 나올까?’라며 자괴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왜 교회에 안 나올까요? 이것은 분명히 성찰해야 한다고 봅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신앙고백과 우리 교단의 교리 표준으로 헌법 정신에 의해서 목회를 성실하게 잘한 교회는 95% 이상 나온다고 합니다. 현장예배를 다시금 재개했는데 거의 100%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희망입니다. 우리 목사님들도 목회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야 합니다.

구 국장 : 한국교회가 어려워하는 부분이 청년 세대입니다. 막연히 숙제로만 생각하고 명쾌하게 답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청년 세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지표를 제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 목사 : 청년세대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세대는 아닙니다. 교회가 세대를 나눠서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세대를 고립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세대가 어우러지는 곳이고 모든 세대가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언약 백성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해야 하는 데 각 부서로 나뉘다 보니까 그 친구들이 예배에서 격리되고, 말로는 청년들을 위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고립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거지요. 그리고 어른들의 경우에도 청년들을 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제가 청년 사역을 할 때, 어른들이 저에게 늘 불만을 제기하셨던 게, 청년들이 인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청년들의 입장에서 그분들이 누군지 몰라서 인사를 안 합니다. 관계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사하고 소통할 여지가 없는 거지요. 이 부분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칼빈 선생은 교회를 이야기하면서 첫 번째로 교회가 성도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품에 안고 돌봅니다. 그러니 그 자녀를 모를 수 없으며, 또 자녀 역시 어머니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청년들을 품에 안고 가르쳐야 하며, 그렇게 가슴으로 품는 자리가 예배의 자리입니다. 그들이 청년들이 온 성도들과 함께 예배함으로 자신들이 그 교회의 자녀요, 일원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앞으로 한국교회에 더 큰 여러 어려움을 줄 것인데 그 위협의 주 표적은 청년들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청년들은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여서, 비대면 예배에 금방 적응하고 또 이를 선호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 썼던 제 첫 번째 글이 이 내용입니다. ‘왜 꼭 교회에서 예배해야 하느냐?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면 안 되느냐?’ 저는 이것이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라고 보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 문제가 더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더군요. 한편 코로나 19는 우리 시대 교회가 무엇에 취약한지를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집합예배가 훼손됐다는 측면에서 코로나19 사태는 하나님이 한국교회의 예배에 대해서 경고하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이기에, 이번 사건은 하나님께서 고신교회에 예배의 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시대는 예배를 좀 더 편하게, 성도들의 필요에 맞춰서 드리려고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성경적이고 신앙 고백적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회집의 숫자보다도 교회의 본질, 예배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우리가 교회다움을 이야기할 때 교회다움은 공예배를 통해서 확인되지 않습니까? 순수한 복음이 전파되고, 성례가 바르게 이루어지고 이를 위해 직분이 제대로 시행되는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그러니 이번 사건을 그런 교회로 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모이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오히려 현장예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됩니다. 자녀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듯이, 현장예배를 드리는 교회의 품에서 교회의 자녀들이 자랍니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들이 교회와 예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다시 끌어당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현장에서 함께 예배하는 게 예배의 본질이고, 거기(공예배를 드리는)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시대 청년들은 수에 대한 환상이 크게 없습니다. 어른들은 수에 대한 환상이 있지만, 청년들은 대형집회나 많이 모이는 것보다, 깊이 소통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수에 대한 압박과 집착을 좀 내려놓고 관계적인 것들에 더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청년 사역은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교제입니다. 청년들은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친교 모임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교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게 먼저 되어야 인간적인 친교가 의미가 있고 효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호회밖에 안 됩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예배의 말씀과 성례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말씀을 듣고 성례에 참여하는 이들이 주님 안에서 한 지체며, 한 형제, 한 가족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우리의 교제 현장은 예배며, 말씀과 성례로 교제한다.’라는 것을 선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 가운데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에 온 힘을 기울였고, 그리스도의 성찬이 풍성하게 베풀어지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이 예배가 참된 교제의 현장이며, 성찬이 최고 교제의 방편임을 깨달아 가더군요. 그리고 자연스레 예배와 성찬을 귀하게 여기더군요. 성도의 교제의 현장은 예배며, 교제의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성찬입니다.


구 국장 : 이번에 연재하는 동안 우리 신문사에도 다양한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필자들에게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피드백과 에피소드도 함께 소개해 주십시오.


박 목사 : 독자들로부터 지지도 받고 항의도 받는 등 다양한 감정을 다 느꼈습니다. 특별히 글을 읽고 공감하고 동의해주신 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분들의 응원과 지지에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제 글에 동의를 못 하시는 분과 대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입장의 차이가 있었지만, 시대적인 교회 상이 아닌 우리 교단이 고백하는 신앙 고백적인 교회를 설명함으로 의견 차이를 좁혀 갈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한 목사님께 두 주 연속 연락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제 글을 보고 공감하신다면 격려해 주시더군요. 이런 경우 많은 격려가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있고, 또 작으나마 유익이 있다니 뿌듯한 마음도 들고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 부여도 되었습니다.


한편 목사에게는 주일 저녁이 쉬는 시간인데 저는 글 때문에 주일 저녁부터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했고, 또 월요일마다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빼앗겨야 했었는데, 이 때문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지난 6개월 동안 잘 참아 준 아내와 자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신 목사 : 한 번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주일 사역을 끝으로 ‘나는 끝났다. 내일 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요일 아침에 기독교보 원고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부리나케 집중해서 원고 하나를 끝낸 기억이 있습니다. 원고는 마감이 쓴다는 게 진리입니다.


연재하는 동안 카톡과 전화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로 한 분이 카톡으로 글을 보내 이런 글을 기독교보에서 계속 볼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한편으로 감사하고 한편으로 슬펐습니다. 이게 우리 교단의 정체성이고 신학이고 표준문서로서 당연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대로 목회하고 설교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자주 못 듣는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또 한 분은 전화해서 쓴 글을 파일로 받을 수 있느냐고 묻길래 그것은 힘들고 나중에 이것을 기초해서 책이 나오면 보내드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구 국장: 연재를 끝내고 후기를 나누면서 드는 생각은 6개월의 시간 속에 담아낸 이 땀과 수고의 영적 자산들이 많은 열매로 돌아왔으면 하는 기대가 생깁니다.


출판이나 세미나를 통해 다시 한번 각인되는 모티브가 있었으면 합니다.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십시오.


박 목사 : 현재까지는 출판 계획이 없습니다. 책을 내겠다는 마음보다는 6개월 동안 연재하면서 제가 많이 배우고 또 훈련되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주 애써서 수고한 글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비록 실력은 없지만 매주 성실히 작업하며, 제 나름대로는 최선의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청년들에게 유익하게 쓰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쓴 사람으로 목회를 그렇게 해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글을 썼으니 이제 그런 교회를 보여 주는 게 제가 할 사명이자 책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하나 쓴다면 교회에 관해 책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특별히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 목회현장의 이야기를 성경신학과 교의학적으로 정리 해보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의 글에 직분과 은혜의 방편, 교회 표지 등을 목회적으로 적용한 글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구성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신 목사 : 저는 언젠가 교회론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목회하고,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상아탑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기에 신학 이론과 실천이 접목되는 책을 쓰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후배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로 나가든지 목회하든지 해야 합니다. 대부분 목회합니다. 개혁주의 목회를 해야 하는데,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을 파편적으로만 공부하고 전체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그 안에 세세한 내용을 공부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졸업하고서 개인이 이전에 선배에게 배운 것이나 현재 이 시대에 유행하는 방법들을 추구하면서 목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론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언젠가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보의 부탁으로 교회론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대지도 책의 구성에 맞게 가능하면 세 개 대지로 나뉘어서 썼습니다.


기독교보에는 원론적인 글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실제 목회현장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각론이고 실천적인 부분입니다. 거기에는 좋은 일, 기쁜 일, 시행착오, 슬픈 일, 안 좋은 일도 있습니다. 그런 내용을 이 안에 넣을 예정입니다. 이론과 목회현장 괴리가 어떤 것인지? 그렇게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 국장 : 마지막으로 독자들과 한국교회에 남기고 싶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신 목사 : 가능하면 매주 연재 글 마지막에 ‘이런 고신교회가 되길 기대하고 소망한다.’라는 말로 거의 끝냈습니다. 예를 들어 목사와 설교, 교회와 설교라고 한다면 고신 교회 강단이 성경적인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료나 정보가 없어서 모르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듣고 보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야고보서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늘 마음에 와닿습니다.


독자들이 6개월 동안 어떻게 보면 원론적인 글을 읽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냥 좋은 글을 읽었다는 것에서 끝낼 게 아니라 읽으신 분이 목사라면 그렇게 목회하고, 장로 등 중직자라고 하면 그렇게 교회를 치리하고 섬기고 봉사함으로 목사와 함께 목회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그런 성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박 목사 : 저는 교회 밖의 청년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이 떠나지 않도록 교회가 잘 붙들고 돌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본질이 흔들리고, 외부적으로는 비난을 받는 어려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교회가 많이 아프고 힘듭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플 때 진짜 자녀가 드러납니다. 모두가 교회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교회의 많은 문제가 노출되는 이때, 진짜 자녀라면 교회를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어머니를 보필하고, 본질적인 교회로서의 건강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교회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고신교회의 청년들이 그렇게 모두 교회의 자녀들이 되면 좋겠네요.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비록 세대 차이와 간극이 있겠지만, 다시 청년들을 붙들고 교회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치고 어머니로서 청년들을 더 사랑하고 돌보아 가면 좋겠습니다.


구 국장 : 지난 6개월 동안 연재해주시고 또 좌담회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통해 교회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정리: 이국희 부국장/ 사진: 박진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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