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 이병수 교수(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고신대 이병수 교수(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고신대 이병수 교수(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발 야권 대선후보군으로 언급되면서 김동연 전 경제 부총리가 대권 주자로 언론에 거론되고 있다.

고신총회 서울영동교회(담임목사 정현구) 집사인 그는 자기가 속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대한 자부심과 담임목사의 설교와 인품을 존중하는 신실한 고신교회 성도이다.

그는 다른 대권 후보자들과 달리 ‘스토리’가 있다. 어머니와 세 동생의 생계를 책임졌던 소년 가장이었고 상고를 나와 은행을 다녔고, 그 시절 야간대에서 행정·입법 고시합격과 공무원이 되어서 기재부 차관을 거쳐 부총리까지. 국무조정 시절엔 돌연 사표를 내고 소외된 청소년을 위한 강연 봉사에 나서기도 했다.

거기다 큰아들(28세)이 2013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국무조정 실장이던 당시 그는 아들을 보낸 날에도 맡은 일을 끝내기 위해 조용히 출근했다고 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부총리로 재직했지만, 경제정책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소신 있는 발언, 신중한 행동과 태도로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지난 총선과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있었지만 모든 공직과 직책을 거절했던 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함께 고신교회 일부 성도들이 그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녹록하지 않은 경제 상황 가운데 김동연 전 부총리가 현 정부의 국무총리로 부름을 받을지, 내년 서울시장으로 출마할지,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우뚝 설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필자가 여기서 주목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기독교인 중 누가 기독교인 대권후보로 나오든 그가 성경에 철저하게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고 당선되었으면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하나님 중심적·영적·지적·도덕적 지도자

그동안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뒤 많은 대통령이 기독교 배경에서 배출되었다. 그런데 비극적으로 마치는 경우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감리교 정동교회 장로로 대한민국의 건국과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크게 공헌했지만, 독재자로 마지막을 마쳤고, 김영삼 대통령은 장로교 합동의 충현교회 장로로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크게 공헌했지만, IMF(국제통화기금)를 초래케 한 불명예로 마무리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통합 소망교회 장로 출신이지만, 금전 문제로 재판받고 있다.

그들의 공을 그에 걸맞게 평가하지만, 그들이 정말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정치를 했는지 성찰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안희정·오거돈·박원순 사태를 보면서 지도자의 덕목에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든 국민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따라서 많은 기독교인은 독실한 신앙과 국가경영의 능력과 도덕성이 조화롭게 겸비된 성경적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지도자를 목말라 하고 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정말 요셉과 다니엘과 같이 바로의 시대 이집트와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제국의 시대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정치를 구현했던 하나님 중심적·영적·지적·도덕적 지도자가 세계화 및 국제화의 시대에 대한민국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부족주의적’ 민족주의에 기생하고 편향해서 정치를 이용하는 지도자들이 있다면 하루빨리 정치권에서 물러가야 한다. 민족과 국가를 우선시·중요시하지만, 세계 시민적·보편적 인류애를 가진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면교사다.

코로나19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창조적 정신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미증유의 세계를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대처할 것인가?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보았다. ‘위기’를 ‘기회’로 보는 것은 수용자의 관점과 자세와 태도에 결정적으로 달려있고 중요하다. 중세시대 페스트가 창궐함에 따라 그 당시 사람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한 것처럼 위기를 기회로 선용할 수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해서 지나치게 그것을 과장하는 것과 과도하고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안일함의 어느 한쪽의 ‘쏠림현상’을 피하고 믿음 안에서 그 사태를 객관적·균형 있게 바라보는 중용의 덕과 거시적·장기적 관점과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창조적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전염병의 지구적 창궐, 의료사태, 재난과 안전의 문제, 심각한 경제난, 수많은 실업과 가난과 빈곤의 문제, 비대면 세상에서 교육의 제도 변화 요구 및 4차 산업의 도래와 함께 이 전환기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계화와 지구화의 경제 및 사회 체제적 관점에서 먼저 살펴보자.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동구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몰락으로 서구 자본주의 승리를 주장한 ‘역사의 종말’의 섣부른 선언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세계인구의 1%가 부의 46%, 세계인구의 10%가 부의 86%를 소유하고 있다.

들뢰즈·과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자본주의라는 엄청난 기계를 ‘욕망의 원리’로, 알랭 바디우가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에서 서구 사회를 ‘욕망의 주체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무한한 욕망을 합법적으로 긍정하고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그 시장지상주의가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상숭배가 아닌가?

과학지상주의, 기술지상주의, 경제지상주의

밥 하웃즈바르트는 현대의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현대문화의 세 가지 거짓 신들에 대한 예배로 우리의 삶을 사악하게 왜곡하고 있는 우상을 세 가지로 지적하면서 그것을 ‘천박한 삼위일체’로 표현하는데 과학지상주의, 기술지상주의, 경제지상주의이다. 리처드 보컴이 지적한 것처럼 경제성장으로 누가 그리고 무엇이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경제성장에 관해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에 의하면 첫째, 경제성장은 극빈층에게 이익과 도움이 되는가? 둘째, 경제성장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경제성장은 적어도 경제 번영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가치들을 파괴하지 않는가? 이런 고려 없는 경제성장은 위험하다. 특히 경제지상주의는 현대판 몰렉이다. 암몬 족속의 신 몰렉은 어린이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는 신이었다.

“우상 안에 불을 지피면 그 우상은 열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북 치는 사람들이 한껏 목청을 돋우면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우상의 열로 녹아내린 손 위에 올려놓는다. 이때 북 치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더욱 있는 힘을 다해 북을 친다. 경제지상주의라는 신은 고대 몰렉과 같지 않은가?”

얼굴 있는 사람 냄새나는 경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로 돌아가 보자. 미국이 우리 사회의 절대적 모범으로 보였는데 그 사회에서 겪는 심각한 인종차별, 부의 엄청난 불평등, 취약한 의료체계 그리고 유럽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대처 모습을 보면서 ‘서구의 신화’ 및 ‘백인의 신화’가 깨어지고 있지 않은가? 미국 및 서구의 경제체제와 사회체제가 정상적인가? 대한민국과 전 세계가 따라가야 할 모범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성경적 관점에 기초해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해야 할 심각한 시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가운데 선방한 대만 및 대한민국의 동아시아적 가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성,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다원적 역할, 시장(市場)과 국가의 균형적 역할을 성경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새로운 국가 정체와 확립의 모델로 만드는 데 참고해야 할지? 세계 경제체계가 이대로 좋은 것인지?

업의 세계화 가운데 값싼 노동력의 나라에서 싸게 구매할 수 있었던 제품들이 전염병으로 국제 분업 체계가 무너지면서 각자의 나라 생산체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 그동안 값싼 노동력과 싼 가격으로 합리성과 효율성의 극대화로 이루어진 얼굴 없는 제품 가운데, 희생당한 얼굴 있는 노동자의 인간 존중의 회복, 제품 경쟁력 강화 때문에 가격을 낮추기 위해 비정규직 양산화·위험의 외주화로 고귀한 목숨을 잃었던 젊은 우리 자녀들, 얼굴 없는 물화 된 자본주의에, 얼굴 있는 사람 냄새나는 경제를 만들 수 없는지?

한 국가든 세계든 새로운 판을 짜든지 아니면 기존의 판을 새롭게 조정하든지? 이런 시점에서 어떤 지도자가 대한민국과 지방정부의 수장으로 선출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우리 기독교인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이런 상황 가운데 고신교단과 한국교회는 네덜란드의 총리를 역임한 목사, 신학자, 교육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성경에 기초해서 교회, 교육, 언론 및 정치에 칼빈주의적 세계관을 네덜란드와 많은 기독교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적들에게는 ‘열 개의 머리와 백 개의 손을 가진 적수’로, 친구들에게는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주신 선물’로 불렸던 그는 지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천재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모세와 같은 열정과 활력을 지닌 저명한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신학자 및 목사였던 그는 특히 1880년에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of Amsterdam)를 설립하고, 1901년부터 1905년까지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주목할 공헌으로는 실재와 삶, 사상, 문화의 모든 영역에 대한 성경적 하나님의 주권에 초점을 맞춘 종교개혁자들(일차적으로는 칼빈)의 신학에서 유래한 강력한 영적 전망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자유대학교 봉헌식에서 행한 취임 연설의 절정부에서 부르짖었듯이 “인간 실존의 모든 영역에서 만물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고 외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카이퍼의 칼빈주의 신학과 철학과 세계관이 우리 고신교회와 고신대학교의 비전과 철학의 기초였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지금 우리에게 구현되고 있는가?

명목상으로 이론적으로 말하지만 말이다. 카이퍼는 이 신학적 원리에서 자신의 삶을 다 바쳐 이루고자 했던 목표, 즉 네덜란드 교회와 국가의 갱신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주 인용되는 구절에서 그 목표를 이렇게 묘사했다.

“하나의 열망이 내 삶의 열정을 지배해왔다. 하나의 고귀한 동기가 내 정신과 영혼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부과하는 거룩한 필연성에서 도피하려는 마음을 품기 전에 내 목숨이 끝나기를! 그 열망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의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다시 한번 가정과 학교, 국가 안에 세워지는 것이다. 즉 이 나라의 양심 안에 성경과 피조물이 증언하는 주의 규례가 새겨져서 마침내 이 나라가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기독교 철학에 입각한 대한민국

고신교회와 한국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이 문명사적 전환의 위기 앞에서 김동연 전 부총리의 대권후보 거론을 계기로 아브라함 카이퍼와 같이 성경에 기초한 칼빈주의적 세계관과 철학으로 준비되고 무장된 고신교회와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를 키우자!!!

무엇보다도 무너져 가는 가정, 교회, 학교, 사회와 국가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이 철저하게 미치게 하자. 이것이 고신교회가 작지만, 한국과 세계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확신하고 있다.

1903년에 쓴 한 글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앞으로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세 가지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첫째,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공화국을 세운다. 둘째, 세계선교 대국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첫째와 둘째가 되면 영국과 미국과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승만, 그의 독재는 절대 본받지 않더라도 기독교 철학에 입각한 대한민국을 세우자는 그의 정신을 구현하는 고신교회와 한국교회가 되자.

※이병수 교수는 △고신대 신학과 및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졸업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 및 선교학 박사 △고신대 국제문화 선교학과 재직 △김해중앙교회 협동목사 △국제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 등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는 선교학 개론(공저, 대한기독교서회) 및 난민 선교(공저, 파발마)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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