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노래 합창단 그리고 천종호 장로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추면 행복하다고 말해 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거~”

꾹꾹 마음을 담아내듯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무대에 서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무래 아래의 수많은 눈동자들은 일렁이고 있습니다. 간혹 눈가를 훔치는 사람들도 보이네요. 애정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관객들의 모습에 묘한 거룩함까지 느껴집니다. 세계적인 명성이나 그에 걸맞은 실력이라서가 아닙니다. 그저 지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아이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울 뿐이죠.

이날 무대의 주인공들은 바로 바람의 노래 합창단’(단장 최기환 장로, 지휘 김종은 장로)으로 생소한 이름입니다. 게다가 창단연주회이니 관객들이 이 합창단에 대한 정보는 더더욱 알 리가 없겠네요.


지난 1121, 부산법원청사 대강당에서는 거위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특별한 공연이 열렸습니다. ‘바람의 합창단의 창단연주회였죠. 합창단 창단연주회가 무얼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매년 가수의 꿈을 안고 TV오디션 프로그램에 몰려드는 뛰어난 기량의 아이들이 수천, 수만 명인 대한민국 안에서 노래 좀 한다하는 아이들을 모아 만든 뛰어날 것도 특별할 것도 합창단으로 생각하기 십상이겠죠.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넣어두시고, 여기 있는 아이들을 바라봐주세요. 무대 위에서 힘껏 노래 부르면서 어느새 발그레 상기된 아이들을 말이죠.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절도 등 저마다의 사건으로 인해 아이들은 한때 방황의 파도에 휩쓸렸었습니다. 그 파도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로 쉽사리 묵인할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기도 했죠.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줘야 했던 가정도 사회도 아이들을 품어내진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발을 딛고 있는 것조차 불안해 보일 때, 천종호 부장판사(부산가정법원 소년보호 담당, 금정평안교회 장로)가 아이들을 위해 나섰습니다.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해 흔들리는 아이들을 위해 사법형 그룹홈이라 불리는 청소년회복센터를 만들어 낸 것이죠. 그렇게 시작된 청소년회복센터는 부산과 경남, 울산 등지에 12곳이 생겨났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바람의 노래 합창단의 단원 모두는 청소년회복센터에 둥지를 튼 아이들로 이들의 창단연주회가 성사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아이들을 무슨 방법으로 합창을 시키겠냐며 부정적인 시선들이 더 많았을 테죠. 갇혀 있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아이들이 스스로 합창연습에 임할 것인지도 반신반의 상태였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합창단원으로 지난 6개월간의 연습과정을 거쳐 이날 무대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박수를 받거나, 칭찬을 듣는 대신 비난과 질책, 손가락질이 익숙했는데 말이죠.

▲천종호 판사
▲천종호 판사

바람의 노래 합창단이 창단연주회를 갖기까지 발로 뛰며 헌신한 천종호 장로(금정평안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학교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천종호 판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법정에 선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 때, 따뜻한 관심과 사랑 대신 소위 말하는 비행청소년이라는 주홍글씨를 달아놓고 외면한 것은 아닌지 말이죠.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기다려주면 건강한 아이들로 자랄 수 있습니다. 한때의 잘못으로 어두운 시간 속에 있는 아이들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실상을 모르거나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예요.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격려와 사랑이 필요함을 기억해 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처음 합창단 연습이 시작됐던 날이었습니다. 막상 청소년회복센터를 통해 연습에 오긴 왔지만 그다지 흥미롭지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아이들의 모습은 무기력해 보였죠.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 갈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말이 아마도 맞을 텝니다.


▲지휘 김종은 장로
▲지휘 김종은 장로
합창단의 지휘를 맡은 김종은 장로(괴정제일교회)나날이 일취월장 할 정도의 합창 실력은 아니었지만 합창 연습이 거듭될수록 아이들의 변화가 눈에 보였어요. 지휘라는 어려운 자리를 덜컥 맡아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은 정말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게 했죠.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 주신 천종호 판사님을 비롯해 우리 합창단의 단장이신 최기환 장로님(거제교회)과 지원해 주신 옥수석 목사님(거제교회),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헌신으로 섬겨주신 센터장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이들은 부산과 경남, 울산, 마산, 진해 등 흩어진 청소년회복센터에서 합창 연습을 위해 매주 부산의 금정평안교회로 모였습니다. 아이들의 연습을 위해 각 지역의 센터장들은 직접 운전을 하면서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금정평안교회의 박용성 목사를 비롯해 성도들은 이런 아이들과 센터장들을 위해 사랑이 듬뿍 담긴 저녁 식사와 간식을 준비했고요. 합창단장인 최기환 장로와 옥수석 목사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고, 천종호 장로는 이 모든 그림의 중심에 서서 진두지휘했습니다. 연습이 2달쯤 진행됐을 때부터는 무기력해 보이던 아이들도 재미를 붙이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엿보였습니다.

천 장로는 연습을 하다 보니 합창단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기분 좋은 흥분이 느껴졌습니다. 창단연주회를 앞두고, 먼저 거제교회 성도님들을 모시고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무대에 서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무대에 서 본 경험도 없고, 몇 달 동안 연습하긴 했어도 출중한 실력도 아님을 알기에 아이들은 잔뜩 움츠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자신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관객들이 바로 눈앞에 있음을 본 아이들은 달라졌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노래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전혀 가능성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의 생각은 기우였음을, 결국 아이들은 스스로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활짝 피어난 것입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려져가는 아이들이지만, 바람을 멈추고 희망을 찾아가자는 의미의 바람의 노래 합창단의 창단연주회는 아이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한 조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기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신 성탄절입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반짝이는 트리가 괜스레 마음을 들뜨게 하죠.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별한 날들 중의 하루가 아닌 성탄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뜨거운 사랑을 끊임없이 보내시는 하나님아버지가 계심을 기억하시고, 그 뜨거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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