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이 없다?

복음 앞에서 내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다가설 때 그들이 다가온다.

벽은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추위와 더위를 막고 짐승과 벌레, 도적이나 강도, 불편한 시선을 막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명 보호막인 셈이다. 그러나 그 벽이 때로는 사람을 구속하는 역할을 한다. 감옥도 벽으로 둘러친 곳이며, 안방도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그 벽 안에 들어가 안심하고 보호를 받고 쉼도 얻고 안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벽이 가는 길을 막는 날에는 문제가 다르다.

그 벽이 영적으로 작동할 때 더욱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영적인 벽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벽보다 훨씬 무섭게 우리의 삶을 구속한다. 그 벽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겨났다. 아담이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던 그 날부터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린 그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문제의 벽은 온 인류를 불행의 올무에 걸어버렸다.

불순종하는 순간, 사단의 말을 듣고 따르는 순간, 다시 말해 죄를 범하는 순간 생겨난 그 장벽이 인류의 생명의 빛을 가로막았다. 그 결과 어둠이 깊어졌고 그 어둠은 죽음을 낳았다. 종신토록 땀을 흘려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인류는 그렇게 어둠에 휘말리고 말았다. 빛을 잃은 사람들은 결국 어둠 속을 방황하게 되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4:19) 어둠에 속한 사람들의 상태를 누가복음은 가난과 포로 됨과 눈먼 것과 눌림”(4:18)이라 표현한다.

이 어둠은 인위적인 노력으로 물러가지 않는다. 땅을 치고 발을 굴러도 어둠을 물리칠 수 없다. 어둠에 갇힌 사람들은 답답한 삶을 답답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 안에는 기쁨이 없고 달려도 고통뿐이다. 넘어지고 상하고 슬픔뿐인 길을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 어둠을 물리치신 분이 오셨다. 저주의 벽을 무너뜨리신 분이 오신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4~5) 가망이 없는 우리가 생명의 빛을 만나게 됐다.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그 길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기시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벽을 무너뜨리셨다. 성소의 휘장이 찢기신 사건은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피로 인해 인종과 신앙과 모든 사람 사이에 있는 장벽을 무너뜨리신 것이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종이 됐음을 고백한다. 율법 안에 갇혀있던 그가 예수 안에 자유를 알게 된 후 그는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 안에 살고 계심을 고백하게 됐다.(2:20) 그리고 그는 한 영혼을 얻기 위해 혈통과 모든 사람 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오직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 종의 길을 선택했다고 고백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나는 지극히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많았다. 낯선 곳에 가는 것과 낯선 사람을 만나는 그 일이 정말 어려운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알고 난 후 이 문제가 큰 고민이었다. 사람의 낯을 피하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문제가 해결됐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이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예수님 믿는 믿음의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낯섦은 생후 8개월쯤에 생긴다. 친숙한 엄마나 가족 외의 사람을 경계하고 회피하는 유아 성장 과정의 일이다. 그런데 내 평생 이것을 뛰어넘지 못해 사람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의 능력을 알게 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겁내지 않게 된다. 끔찍한 상황들이 계속되는 가정들을 많이 만났다. 전도하러 다니면서 극단적인 선택과 도박·알코올·게임중독, 가정폭력, 이혼 등 말로 하기 어려운 가정들을 많이 만났다.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인간적인 사랑과 도움도 그 순간뿐인 일들이 많았다. 길이 없는 분들께 당당히 어디서든 복음을 전했다. 복음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능력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굴이 없다. 약간 미친 사람처럼 체면을 버렸다. 복음 앞에 사는 사람은 자존심도 의미가 없다. 내 마음의 벽을 내가 허물고 다가설 때 사람들도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

요즘은 나이 들어감의 축복이 뭔가를 알게 돼 기쁘다. 젊어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 들어 이제는 누구든지 바로 말을 걸어도 부담이 적고 쉽게 대화가 열린다. 참 감사한 일이다. 사람의 체면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낯가림의 벽을 허물면 다 이웃이요, 전도할 수 있는 길이 열림을 확인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헌물 안에는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사례비 값은 했는가매일 자문

목사에게는 무서운 경계선이 있다. 삯꾼이냐 목자냐 하는 선이다. 예수님이 정해놓으신 삯꾼과 목자의 선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있다.(10:11~12)

한동안 교회에서 사례금 받는 문제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도들은 얻은 소산을 헌금으로 드리는데 내가 그것을 챙겨간다는 게 영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심정은 비슷하다. 그래서 하루하루 나의 가치를 고민하며 산다. 퇴근 시간에 업무일지를 기록하고 문을 나설 때 사례비 값은 했는가?’하며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하루하루를 대충대충 보내고 당연한 것처럼 돈을 챙기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적질이다.

헌물 안에는 하루하루 고단한 삶이 담겨 있다. 기도와 눈물이 담겨 있다. 그래서 헌금을 다루는 것이 정말 무섭다. 지난달 지방도를 따라 당진으로 올라올 때 일이다. LPG 연료를 사용하는 작은 트럭이 앞에 보였다. 왠지 약간씩 흔들거렸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곁에 있던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앞서가는 저 차량은 분명 창문을 열고 운전하고 있을 거요. 아마 에어컨을 끈 채 창문을 열고 가는 차량 같소. 저분에게는 단돈 1,000원이 무서운 일일 것 같네요.”

속도를 올려 작은 트럭 옆으로 다가갔다. 과연 그랬다. 들이치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힘겹게 달려가는 운전자가 보였다. 그의 고단한 얼굴이 가슴으로 밀려왔다.

우리 성도 가운데도 하루하루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 때문에 아끼고 아낀 물질을 헌금 봉투에 넣고 예배당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물질에 대한 정직함과 양심이 무뎌지면 결국 삯꾼이 된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이웃에 대해서는 풍성할수록 복된 일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무엘은 그의 사명을 마치며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자신의 삶을 점검했다. 첫째는 물질관이었다. 물질에 부당함이 없고 뇌물에 눈이 흐려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삼상 12:3)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양떼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않았다.(삼상 12:23) 이것이야말로 진짜 목자의 양심고백이라고 생각한다.

전도문이 막히는 문제의 원인은 교회 밖에 있지 않다. 교회 안의 문제다. 목자의 양심이 살아있는 만큼 건강한 교회가 된다. 그런 생각에 가혹하리만큼 말씀으로 비추며 엄격하게 살아왔다. 혹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심방을 하루에 27~30가구씩 돌았다. 밤늦게까지 심방 말씀을 준비하고 새벽기도회 때 수십 가구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기도했다. 집중심방 때 동행하는 사람을 앞서 보내고 그다음 가정을 준비시켰다.

하루는 오후 4시쯤 시골 마을에 도착하였다. 5층 빌라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다. 숨이 턱 막혀왔다. 꼭대기 층이라 얼마나 더운지 사우나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5층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공사장 안전모가 가득했다. 손질하고 있던 성도에게 물었다. “이거 뭐예요?” “안전모 손질하는 부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후다닥 치웠다. “괜찮습니다.”하고는 예배를 드렸다. 곁에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가방을 뒤적여 보니 20만원이 있었다.

아들아, 아껴 쓰거라.” 그런데 순간 충격적인 말을 그 아이에게서 들었다. “목사님, 이걸 가지면 3년은 쓰겠네요.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 아이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돈을 보면 그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아빠는 집을 나갔고 삼남매를 맡아 기르며 병든 그 엄마는 그렇게 인생의 짐을 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집에서 나와 모퉁이를 돌아가면 토스트 가게가 있었다. 한낮인데도 불이 꺼져 있었다. 혹시나 하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벌겋게 달아오른 철판 앞에 성도가 서 있었다. 열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선풍기 하나 돌리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아무리 물어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차 싶어 냉장고를 열어봤다. 재료가 하나도 없었다. 달걀과 식빵만 있으면 되는 장사인데 그마저도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즉시 가게에서 나와 달걀과 식빵을 한가득 샀다. 그걸 건네고 돌아오는데 하늘이 하얗게 보였다.

목사는 성도들의 삶에서 겪는 목마름과 쓴맛을 잘 모른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느끼고자 새벽 410분에 일어나 밤 11시에 퇴근했다. 지친 마음으로 달려오는 성도들에게 허망한 예배로 실망시켜 드려서는 절대 안 된다는 다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내 잘난 맛에 목회를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으려고 몸부림쳤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수훈 목사(당진동일교회) / 구본철 기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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