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기 사랑과 용서의 발자취를 따라

죽음도 이기지 못했던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나라 사랑’을 실천했던 손양원 목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웃을 사랑한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던 손 목사는 평생 귀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실천자이자 천국소망의 전도자다. 한센병 환우의 친구이자 아버지였던 손 목사는 일제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운 믿음의 용장이자 자식들을 살해한 젊은이를 용서하여 양아들 삼은 예수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용광로와 같은 사랑을 품은 사람이었다. 자신마저 분단 조국의 희생양이 되었던 손 목사는 49년의 짧은 삶을 마감하며 참된 사랑과 용서를 남겨 후배들에게 믿음의 귀감이 되어준 분이다. 202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70주기가 된다. 손양원 목사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사랑과 용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원망 미움 갈등 분열을 녹인 사랑의 용광로

6.25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의 세월이 흐르고, 대한민국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지만 평화통일은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허리가 잘린 반쪽도 반목과 대립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땅을 하나로 묶고, 용서와 화해로 승화 시킬 수 있는 치유와 회복의 모티브는 없을까?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계나 사회적으로 추앙받고 있는 손양원 목사의 죽음도 이기지 못한 사랑과 용서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예수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손양원 목사는 원망과 미움, 갈등과 분열, 반목과 대립, 이데올로기를 삼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용광로에 녹여 사랑으로 배출시킨 진정한 목회자였으니까. 사랑의 원자탄으로 표현하는 그의 삶 앞에 서면 머리가 숙여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된다.

고난 주간을 한 주 앞두고 김해에서 사단법인 산돌 손양원 기념사업회 회장 이성구 목사(시온성교회 담임)와 만나 승합차로 남해제2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50 여 분만에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급 덕산4길 39에 소재한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 기념관’에 도착하니 관장 박유신 목사(손동희 권사 아들, 손양원 목사의 외손자)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복원된 손양원 목사 생가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 목사 기념관은 부지 3655㎡(1100평)에 전시장, 갤러리, 카페테리아(카페만나)와 기념품 매장, 기록물보관실, 사무실 등의 시설을 갖춘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와 복원된 손양원 목사의 생가(30㎡)로 단장되어 있다. 기념관을 둘러싸고 있는 뒷동산에는 어린 대나무들이 빼곡하게 배수의 진을 친 모습은 영적전쟁을 앞두고 있는 천군천사가 호위하는 듯하다. 이 기념관 입구에는 순교자 기념교회인 칠곡교회가 든든한 지킴이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양원 목사 70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잠정 미뤄지고 있어서 인지 몰라도 관람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칠원교회를 뒤로하고 들어선 생가 왼쪽 옆에 첫 번째 만나는 묵상의 벽에는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나라 사랑’이 새겨져 있고, 시인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 곳을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 무자비한 일제 강점을 / 믿음으로 저항하며 / 삼일독립만세를 일으키신 / 손종일 장로님의 집입니다 / 함안의 독립애국자 / 칠원교회 신앙의 아버지 // 그 아버지에 그 아드님 / 손양원 목사님은 / 신사참배 반대하다 옥살이로 부서지고 / 공산당에게 동인 동신 두 아들과 / 자신마저 순교당한 일가족 // 애양원 한센병자들을 위해 바친 일생 / 그들이 슬프면 눈물로 흐르고 / 그들이 헐벗으면 한 벌 옷이 되어 입히고 / 그들이 맨발이면 한 켤레 신발이 되시고 / 그들이 피고름 아프면 입으로 빨아내시고 / 두 아들 살해한 안재선 양자로 삼으신 / 사랑의 원자탄 애양원의 작은 예수 // 이곳을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 신을 벗고 / 순교자들의 신앙을 생각하며 / 당신과 당신자녀들을 위해 우십시오 // 고훈 순교자의 생가 앞에서.”

손양원 목사의 생가는 초가지붕의 건축물로 평범하다. 그 평범한 지붕아래 대청마루에는 성경책을 읽고 있는 손양원 목사의 청동상 조각물이 보인다. 이 곳에서 다양한 기념사진을 남겨둘 수 있었다.

#사랑의 용광로

원형건축물은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콘크리트 재질이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용광로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이면 손양원 두 팔의 포옹력을 느낄 수 있다. 그 용광로 내부로 들어가는 길은 계단이 아니라 등근 통로처럼 나선형으로 연결된 공간에 평생을 나환자를 돌보며 살아온 손양원 목사의 진심어린 기도문이 새겨져 있는 9가지 기도문 조각물을 만나게 된다. 손양원 목사님의 9가지 감사 기도문은 동인 동신 두 아들을 잃은 그의 고백이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오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거늘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에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 이상 8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은 기쁜 마음과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렇듯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복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성도의 죽음은 복되며, 부활 후 영원한 생명의 시작임을 확고하게 믿는 손양원 목사의 신앙고백이다.

#코너마다 새겨놓은 손양원 목사의 흔적

내부에 들어가 첫 번째 맞이하는 곳은 영상실이다. 이 곳에서는 15분간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KBS에서 상영되었던 ‘그 사람 그 세상’이다. 이 영상물은 CGV에서도 상영되었다, 이 영상물 내용을 짧고 간결하게 편집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어지는 멘토이야기는 손양원 목사의 멘토였던 아버지 손종일 장로와 주기철 목사 그리고 맥크레이 선교사(한국식 맹호은), 노블 메켄지(한국식 매견시) 선교사를 만날 수 있다. 손양원 목사는 멘토들을 통해 신앙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세례와 가르침을 받았고, 한센시 환자들을 향한 사랑과 선교와 전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퇴학 후 영적인 붙들림과 배움의 길을 인도받았다.

다음 코스는 고난의 길이다. 비움으로 고난을 묵상하도록 하였다. 사실 손양원 목사의 기념될만한 유품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남은 것은 여수 애양원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곳에 있는 것도 손양원 목사가 쓰던 부러진 의자, 때 묻은 성경책, 편지 등이 전부이니 손 목사의 고난을 표현하는 데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터. 그러나 원형 기둥 벽을 돌다보면 색다른 느낌과 유의미한 찬양이 흘러 나와 관람 중 작은 틈 속에 손양원 목사의 삶을 되새겨 볼 수 있다. 그렇게 고난의 길을 통과하고 나면 나라사랑과 인간사랑 코너에 도착한다. 일제 강점기하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고를 치룬 청주교도소를 그대로 재현해 놨다. 뿐만 아니라 옥중서신들도 전시하였다. 그는 갇혔으나 그의 용광로 같은 사랑은 막지 못하였다. 마치 바울의 옥중서신처럼 하나님의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자유스럽게 교도소 밖을 넘나들었다. 손양원 목사의 소문을 들은 김구 선생이 서울에서 손양원 목사와 함께 일하기를 청했지만 한센인들을 포기하지 못한 손양원 목사는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당시 김구 선생과 한 테이블에 있는 모습은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놨다. 한센인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이웃사랑 벽면은 한센인들의 거친 피부를 그대로 표현해 놨다. 거친 벽면을 스쳐 지나다보면 한센인과 함께 하였던 손양원 목사의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사랑이 온몸의 전율로 다가온다.

#순교자의 발자취가 남겨진 유적지

애양원에는 손양원 목사와 동인 동신 두 아들의 세개의 무덤을 이루고 있다면 이 곳에는 비어있는 세 개의 나무관이 있다. 2층 나라사랑 테마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설치되어 있다. 예수님이 성육신의 삶 이후 대속의 죽음이후 부활의 아침에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가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는 부활의 소식을 전해 주었듯이 이 검은색 빈 나무관은 이 땅의 삶 이후에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전시관을 내려오면 캐나다 화가 최미정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얼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한센인들과 함께 사역했던 모습들과 손양원 목사의 장례식 때 애양원의 모든 식구들이 마지막 떠나보내는 사실적인 장면들이 큰 감동으로 밀려온다.

여수 애양원은 한센인들을 품은 손양원 목사의 삶을 따라 갈 수가 있다면 이곳 손양원기념관은 그의 신앙의 뿌리였던 칠원교회와 고향에서의 삶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그동안 고신인이었던 손양원 목사를 제대로 기념하지 못해 많은 연구자들이 찾아왔지만 제대로 보여줄 것이 없었던 손양원 목사의 생가는 고신인들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손길들의 헌신으로 함안군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 목사 기념관으로 세워졌다. 함안 손양원 기념관과 여수 애양원은 차로 두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활발한 교육현장에서 손양원 순교 70주기를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는 발길들이 하루빨리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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