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고투로‘교회와 사회서 각기 다른 태도로 사는 이원론’ 극복”

박해시대 종식 후 세속주의와 형식주의에 함몰

하나님 향한 예배가 인간 중심의 엔터테인먼트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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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013() 오전 11

장소: 부산 라발스호텔 카페 라벨

대담: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 백석대학교 석좌)

구본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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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회기 고신총회가 교회다운 교회 칭송받는 교회라는 표제로 한 회기동안 대사회적인 교회의 선한 영향력 회복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본보는 총회가 지향하는 표제를 고신교회로 확산시켜 교회의 본질에 접근한다는 목적으로 신년대담을 준비했습니다. 그 두 번째 대담은 고신 역사, 초기 기독교회사, 16세기 종교개혁사, 개혁주의 신학, 한국교회사, 호주장로교회와 선교사, 부산·경남지방 기독교사 등 한국교회 사료 발굴에 공헌했으며, 한국교회사가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이상규 교수를 만나 교회와 교인주제로 나눠봅니다. [편집자]

구본철 편집국장 : 2019년 삼일운동 1백주년을 보내고, 2020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삼일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명이었으며, 국가가 위험과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분연히 일어나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독소조항이 담긴 악법들을 법제화하려 하고 있으며, 교회를 적대시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답지 못함으로 인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분위기 형성도 문제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작금의 시대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이상규 교수 : 한마디로 한국교회의 위기라고 봅니다. 이 위기는 이중적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사의 전 시기가 항상 그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경우, 이단의 출현은 내적인 위기였고, 기독교에 대한 물리적 박해는 외부적 위기였다고 할 수 있지요. 이 위기 가운데서 교회 지도자들은 칼을 들기 보다는 펜을 선택했다고 말하는데, 그 펜이 바로 기독교에 대한 변증이었습니다. 흔히 변증가들의 변증서가 기독교 박해에 대한 저항으로써 황제나 원로원 의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의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그것은 위정자들에게 보낸 문서가 아니라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체계적인 제시와 교회 내부의 정화를 위한 문서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이방종교와 어떻게 다른가를 제시함으로써 기독교적인 삶을 고취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자의 삶의 정화가 외부적인 도전을 막아내는 힘이라고 본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에서도 그러하다고 봅니다. 한국교회는 내부적으로는 인본주의, 배금주의, 지도자들의 타락 등 세속화가 심화되었고, 분열과 대립, 이단의 범람, 신학적 혼란이 심각하고, 또 외부적으로는 교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초대교회 시대와 같은 물리적인 박해는 없지만 어쩌면 이 보다 더 강력한 이념적 공격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2007년부터 계속 발의되고 있고, 최근에는 혐오표현 규제법안’(2018.2.13) ‘성차별 성희롱 금지 및 권리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2019.2.27) 등이 발의되고 있지 않습니까.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나 차별금지법안이 다름 아닌 국가기관에 의해 국가인권기본계획(NAP)이라는 이름으로 발의되고 이를 강제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안이나 계획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도전이자 신교(信敎)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얼마 전 좌파 성향의 민변 출신 황희석이라는 자가 법무부 인권국장이 되었는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수립 과정에서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며 기독교와 타협은 없다고 발언했다는데, 이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반 기독교운동입니다. 한국기독교는 탄압받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학교에서 입학자격으로 규정한 동성애자가 아닌자를 문제 삼고 기독교학교의 채풀까지도 인권 침혜라는 이름으로 문제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반기독교적인 개인과 집단이 동조하고 있어요.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기독교회가 온 힘을 다해 이들과 싸워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심사참배 강요에 저항했듯이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편집국장 : 교회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의 성도들과 오늘의 성도들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뚜렷한 차이와 그 차이의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 교수 : 기독교가 박해 받는 시대에서는 생존의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종식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세속주의에 빠져 나태하고 형식주의에 함몰되어 기독교적 가치를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4세기 이후의 기독교회가 그러했고 이것이 지금의 한국교회 현실입니다. 일제하에서는 영적 싸움의 대상이 뚜렷했고, 나름대로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광복이후 신교(信敎)의 자유를 누리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신앙정체성에 대한 민감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삶의 환경은 종교적 열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이미 독일의 막스 웨버가 학문적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만 1980년대 후반 이후 종교적 열성은 급격히 식어졌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형식화되고 종교적 헌신이 점점 약화되고 있습니다. 저명한 교회사학자인 스탠포드 리드(S. Reid)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인간 중심의 엔터테인먼트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국장 : 거룩한 무리가 성도라고 할 때, 거룩성을 잃어버렸다면 성도라고도 할 수 없겠고, 성도 개개인이 교회라고 볼 때 거룩성을 잃어버린 교회가 건강하지 못한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거룩성의 상실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 교수 : 원래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거룩을 뜻하는 카도쉬라는 말은 정결하다(to purify)는 뜻을 가진 아카드어 콰두(qadu)에서 유래되었는데, '카도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구별입니다(10:10). 거룩함이란 속된 것으로부터(from) 떼어놓는(set apart) 것인데, 이것이 구별입니다. 그런데 성과 속의 구별이 모호해져 거룩을 상실하면 그것이 바로 세속화입니다. 거룩함을 지켜주는 척도가 구별된 삶, 곧 기독교적 정체성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인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 문제이지요. 그 원인이 현실에 대한 타협입니다. 기독교인은 반틸의 말처럼, 이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자가 아니고, 이 세상 속에 살면서도(conform)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transform) 하는데 이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다보니 거룩을 상실했고,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야고보서의 가르침처럼,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1:27)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편집국장 : 성도의 거룩성은 단순히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형태는 이원론적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연구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써오셨는데, 그럼 교회가 교회답고 성도가 성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를 나눠주십시오.

이 교수 :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가 속화되고 죄로 가득차 있으므로 이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킬 수 없다고 본 이들이 은수자(隱修者)들이잖습니까? 그들이 결국 수도원적인 삶을 추구했는데, 이들이 추구한 세속 사회로부터의 구별은 공간적 구별뿐입니다. 그런 생활이 자신에게는 다소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사회에 영향을 주거나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그것은 이상적인 삶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5:13)이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은 우리가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전재로 한 말입니다. 비록 어려워도 이 세상 속에 살면서도 믿음을 지키려고 고투(苦鬪)하는 그것이 중요한다고 봅니다. 이런 삶의 태도를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딤전 6:12)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려워도 믿음을 지키고 싸우려는 고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와 사회에서 각기 다른 태도로 살아가는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편집국장 : 올해는 광복 75주년이고, 총선이 있는 해입니다.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현실인식은 어떠해야 하며, 성도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 시국을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떤 기도제목으로 기도해야 할까요?

이 교수 : , 좋은 질문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고, 일부 계층은 이미 폐물이 된 이데올로기에 심취되어 역사적 퇴행을 보는 듯한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좌든 우든 상관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온 가치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등인데 이런 가치들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건국론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승만은 기독교적 자유민주주의를 알고 공부했고 경험했던 인물인데, 이 정신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입니다. 그 결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식 사회주의나 통제경제를 지향했다면 오늘의 한국과 같은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시장경제는, 단국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동운 박사가 분명하게 제시하는 바처럼,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입니다. 그는 성경은 시장경제의 교과서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70년의 역사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공산주의나 통제경제보다 우월한 제도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좌파 혹은 우파에 따라 상반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거짓선동이나 가짜뉴스가 우리를 오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fact)이 어떠한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고, 둘째는, 도덕적 기준에 의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자체를 무시하면 맹목주의에 빠지게 되고, 도덕적 분별력을 상실하면 윤리적 혼란을 초래합니다. 사실이 아니고 불법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지지하면 그것은 맹목적인 지지가 되고, 도덕적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적어도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윤리적 분별력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을 말한다면, 첫째는 한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신자다운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기도해야하고, 셋째는 종교의 자유 혹은 신교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어지는 이상규 교수 대담->

http://www.kosinnews.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1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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