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나눔 사역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

2017-11-17     박진탁 목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본부)

대학졸업 이후 우석병원(고려대학교 의과대학전신)에서 원목생활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집이 있는 가회동까지는 걸어서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인데, 근무하던 3년간을 도보로 출퇴근을 했다. 아침 출근시간마다 1시간씩 걸으며 병원을 가던 습관이 자리 잡기까지는 내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이 크나큰 축복이요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 있었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 중에는 몇 해를 병석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며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 걷고자하는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원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 작은 바람을 들으며 원목으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마음 한편이 무겁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걸을 수 있는 일상에 대한 감사로 이어졌다.

병원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픈 환자들을 뒤로 한 채 흡사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 문을 나서는 사람처럼 얼마만큼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막 병원을 빠져나올 무렵이었다. 긴박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 한 대가 병원 정문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응급실로 유턴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마침 담당여의사 민 선생이 난처하고도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맹장이 터진 복막염 환자예요. 길거리에 쓰러져 신음 중인 것을 경찰이 데려왔대요. 빨리 수술하면 살 수 있을텐데...” 당시에는 수술에 필요한 혈액 비용을 반드시 선불로 받는 것이 모든 병원이 관례였다. 혈액 비용을 지불할 길이 없는 환자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난처하고도 급박한 상황에 때마침 내가 제 발로 응급실로 찾아 들어온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해야할지 묻는 담당의사의 눈빛을 나는 충분히 읽을 수가 있었다. 피 값을 대신 선납해주고 싶었지만, 주머니가 비어있어 망설이고 있던 나에게 민선생은 나의 혈액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B형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선생의 두 눈이 커졌다.

이 또한 하나님의 더 큰 뜻이며 사랑이었을까? 마침 실려온 행려환자가 나와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당장 그 자리에서 팔을 걷어 올려 수술에 쓸 380cc의 피를 뽑았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한 첫 번째 헌혈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나마 체험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로부터 15일이 지나 나에게 수혈을 받은 22살의 젊은이가 퇴원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내 피가 이 젊은이의 몸속에 흐르고 있겠구나. 그렇다면 그의 생명이 나와 함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 젊은이를 위해 헌혈을 한 사건을 통해 우리를 위하여 피를 모두 흘리신 예수님의 숭고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나의 삶에 큰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하나님 왜 저에게만 이런 감동을 주십니까. 이 감동을 온 국민과 함께 공유 할 수가 없을까요?” 이러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삼각산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는 중 그럼 네가 이 운동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활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운동은 화살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 분은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당신의 손으로 나를 구부리시는 것이리라. 기도를 통해 생명나눔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온전한 도구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온몸을 다 바쳐 쓰여질 것임을 깨닫게 됐다.